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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시력 치료법

도대체 책을 보지 말라는 소리인가?

 정상인의 시력이 1.2~1.5라면 2.0이나 3.0을 보는 사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해답은 망막에 맺히는 초점크기의 차이이다. 양방에서는 시세포나 시신경의 성능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그럴 수도 있으나 아주 작은 것도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 정상거리 보다 먼 거리에서 보이는데 어떻게 한 순간에 시세포가 발달하여 시신경이 발달하겠는가? 생각으로 수정체를 섬세하ㅔ 움직여 초점크기를 아주 작게 만들 수 있느냐가 관계되는 것이다.
 즉 시력은 초점크기인 거이다.
 디홉터(초점거리)는 외부 상의 거리에 상관없이 상을 정확히 망막에 맺히게 하는데 필요한 거리다.

 그러면 초점크기란 무엇인가?
 망막에 맺히는 그 영상의 선명도라 할 수 있다.
 가장 작은 초점은 가장 선명한 영상을 도출해낸다.
 가장 좋은 시력은 초점크기가 바늘 끝같이 맺힌다. 정상인의 눈은 외부상의 초점거리에 상관없이 선명하고 뚜렷하고 정확하게 망막에 상이 맺힌다. 왜냐하면 수정체의 가변성이 23디홉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리에 따라 자동조절하게 되므로 항상 뚜렷하게 맺힌다.
 눈이 나빠지면 모양체가 굳어져 수정체를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져 굵어지거나 너무 얇아져 초점거리에 한계가 생기고 시력이 나쁠수록 망막의 0점으로부터 초점거리가 짧아지거나(-) 길어져(+) 망막에 맺히는 초점크기에 이상이 생긴다. 즉 번지고 흐리게 보여 상이 정확히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초점크기가 망막에 정확히 맺었을 때 가장 작으며 보는 물체의 크기와 상관없이 작게 맺히지 못한 큰 초점은 흐리고 번지는 것이다.

 좋은 시력은 개개인의 인식능력의 차이며 마음의 정밀함의 차이다.
 즉 아주 가늘게 뽑아낼 수 있는 레이저처럼 나노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사격처럼 큰 중심점 10이 있으면 그것을 다시 나누어 가운데 중심점인 10.99를 맞출 수 있는 영점조준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3/거리에 보이는 상기 점은 실제크기가 안구 내에서는 1/150정도의 크기로 맺힌다.
 30cm 거리에서는 상기 점의 실제크기의 1/10배 크기로 맺힌다. 즉 안구내의 초점 크기는 거리에 반비례한다. (거리가 멀면 멀수록 초점 크기가 작다.)


인간의 정신적 에너지를 크게 이성과 감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성은 주로 좌뇌의 역할이며 감성은 주로 우뇌의 역할이다.

감성적 에너지는 예술, 스포츠, 문학, 종교에서 주로 그 장점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성적 에너지는 과학. 수학, 법, 의학, 제도, 철학, 도덕에서 그 장점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를 같이 사용해야만 아름다운 꽃이 피고, 어느 한 가지가 부족하면 수준의 자기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정신적 에너지가 발양되어 외형적으로 표현될 때 그 수준에 따라

(관심<흥분<신경씀<집중<몰입<미침<호접몽<무아지경<입신<신통방달) 의 단계로 구분한다(양생각).

관심 흥분 신경씀 집중의 단계는 자신의 에너지를 쓰는 단계고, 외부의 상태를 인식할 수 있으며,

몰입(沒入)은 좋은 에너지의 감흥에 빠져 모든 정신이 그 곳에 가 있는 상태이며,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상태며, 외부를 인식함이 잘 안되는 단계다.

미친 단계는 그 에너지에 미쳐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하며 시간과 공간과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다. 에너지대로 감흥이 일어나는 단계며, 무한대로 에너지를 쓸 수 있다. 그 감성의 에너지에 빠져 혼과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일이나 작품으로 보면 그 속에 정신이 무르녹아 외부로 표출이 되는 상태다.

호접몽(胡蝶夢)의 단계는 한 단계 차원을 넘어서 4차원(꿈)에 입문하여 잠재의식(潛在意識)으로 인식이 헷갈리는 것이고

무아지경(無我之境)은 정신적 에너지만 남은 상태로 자아(自我)를 잊어버리고 구분이 없는 상태다.

입신(入神)은 신의 경지에 입문한 상태다. 신의 뜻대로 되는 상태다. 인간 능력을 벗어난 상태다. 에너지의 제약이 없다.

신통방달(神通方達)은 신(神)의 능력이 사방으로 뻗쳐 이르지 못함이 없는 상태다. 신적인 확실한 결과물이 원하는 대로 나오는 상태다.

여기서는 눈으로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는 인간적인 정신상태로 미치는 것이 최고경지이다.

여기서 관심(關心)의 최고수준은 호기심(好奇心)이며 관심, 집중은 이성적 에너지의 사용이다.

그 이후 흥분(興奮), 신경(神經)씀, 집중(集中), 몰입(沒入), 미침의 단계는 모두 감성적 에너지를 사용하였다. 즉 감성적 에너지가 이성적 에너지보다 일의 능률이나 성과적으로 효과적임을 말해주고 있다.

한 예로 우리나라 과거의 음식은 느낌이 살아있는 음식문화였다. 요즘은 서양의 과학화의 도움으로 칼로리(kal)와 성분분석과 그람(g)을 주로 사용하여 음식을 만든다.

어느 것이 훌륭한가?

인체는 바보가 아니다. 느낌이 살아있고, 정신이 살아있는 생명체다. 외향으로 오감(五感)이 작동하고 인지능력(認知能力)이 작동하고 느끼는 강도에 따라 엄청난 수준차이를 나타낸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고 기분에 따라 다르고 음식의 종류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변화가 있다.

이렇게 변화가 있는 인간이 외형적, 분석적, 한정된 지식에 의해 종속(후자)되는 게 그 맛과 향이 살아 있겠는가? 분명 감성적 느낌 수준(전자)보다 못한 것이다.

이렇듯 이성적 에너지를 사용하여 무언가를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하고, 계속 파고들고...물론 오랜 경험과 지식에 의해 훌륭한 결과물이 도출될 수는 있으나, 시간이 많이 들고, 그 지식도 한(限)도 끝도 없다. 이것이다 규정지어진 순간 또 변화가 온다. 이성적 에너지는 생각의 에너지를 주로 쓰므로 어느 면에서는 맞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거짓된 생각도 많다. 그것이 증거라는 보이는 물체로 다가왔을 때만이 진실이 밝혀진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방대하며 무언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을 때에는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가설과 증상만을 모아서 장님 코끼리 꼬리 만지듯 관찰하는 것이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감성적 에너지는 사물과 접하면서 느낌을 갖는 것이므로 자신의 수준에 따라 사실적 표현이 된다. 강하면 강할수록 수준차이가 나는 것이다. 본질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깨닫기가 힘들지, 그 안은 진리며 변하지 않는 순수다. 이성적으로 밝혀내지 못해도 느낌은 그 사람 수준에 있어서는 사실적 표현이며 자기화가 된 에너지인 것이다.

동물들은 본성에 따른다. 즉 감성적인 에너지를 따르는 것이다. 예술, 스포츠적 감각. 무술. 공부의 기억력 등 다 감성의 본능을 따르며,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적이면서 솔직한 자신의 느낌인 것이다.

감성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보다 훨씬 훌륭하고 성취적이며 자기화가 되는 것이다.

한 예로 우리 집 아래층에는 과거 축구 국가대표선수 이기범의 아들 10살짜리 아이가 있다. 우리 자식과 그 아이와 애버랜드에 갔다. 겁이 많아 놀이기구를 거의 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원반던지기하며 놀았다. 나의 경우 <원반을 던질 때 몇도 각도에서 어느 정도의 힘으로 정해진 위치에서 손을 놓으면 상대가 움직이지 않고 정확하게 들어간다.> 라는 것을 이성적 에너지와 노력으로 몇 개월에 걸쳐 연습하여 터득하였다. 그 아이는 원반을 아웃사이드로 던지자 내가 인사이드로 수평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던지는 것을 알려 주었다. 3~4번 던져 보더니 엄청 세게 던지면서 정확하게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처음 해보는 원반을 감성이 뛰어나 느낌으로 체득하고 금방 자기화를 시킨 것이다.

내가 그 정도로 세계 던지려면 다시 각도 수정해야 하고 손의 놓는 포인트를 다시 조정하여 연습을 많이 해야만 한다. 그 때 느낀 점은

감성이 뛰어남이 이렇게 수준차가 나는구나!

어린이와 어른과 실전경험과 연습의 차이를 뛰어넘는구나!

몸으로 하는 자질이나 재능이나 이런 것은 감성의 느낌의 강도에 따라 엄청 차이가 남을 알았다.

참고로 그 놈은 욕을 진짜 잘한다.

농구천재 허재나, 외국 야구 베리본즈나 반지의 제왕 안정환 등 감성이 뛰어나서 한 분야에 천재적 재능을 보인 사람이다. 감성이 뛰어난 사람이 나쁜 것에 느낌을 받으면 이성적 절제가 되지 않는다. 허재의 심판과의 욕이나 싸움이나 약물사건에 휘말린 베리본즈, 안정환의 축구장 폭행사건등 감성이 뛰어난 사람은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 입장에서 보면 구설수에 오르기 마련이다. 뛰어난 감성이 자기화가 되어 좋으면 좋은 데로 발양되고, 나쁘면 나쁜 데로 이성적 절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성이 이성보다 뛰어남이 들어나는 부분이다.

이렇듯 한 개인이 도구(지식)를 사용하지 않는 몸으로 하는 것에 자기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는 수준 있는 감성의 에너지가 자기화가 되었을 때 나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성과 감성의 좋은 에너지 둘 다 반드시 있어야만 인간다운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쁜 것은 이성적 에너지를, 좋은 것은 감성적에너지를 사용하고,

처음과 끝은 이성적 에너지를 이용하여 판단하고, 그 내적인 모든 것은 감성에너지를 사용한다.

또한 개인적인 능력은 감성적 에너지를 사용하고,

타적이고 공동적인 사항은 이성적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라고 정의한다.(양원장)

감성적 아이는 이성을 배워야 하며, 이성적이어서 따지기 좋아하는 아이는 감성을 배워야 한다. 이성이 강한 자는 감성이 메마르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이성이 메마르다. 어느 것이 <좋냐? 나쁘냐?>는 어리석은 질문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유효적절하게 쓰는 사람이 지혜롭다.

위기상황이 오면 이성의 에너지가 적절하며,

생활이 편하고 넉넉할 경우에는 감성의 에너지가 적절하다.

감성의 에너지는 느낌이 서로 교감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살맛나게 한다. 어린아이가 감성적일 땐 좋고 나쁨에 의해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좋을 땐 뭐든지 퍼주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기분 나쁘면 무슨 말을 해도 말을 안 듣고, 이해를 안 한다. 자기감정에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인사에 현명하지 못한 처리나 일을 그르치게 만든다. 감정은 주관적이어서 수준은 높으나 보편타당하지는 않다.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보여주거나 표현될 때 그 아름다움이 꽃이 핀다. 나쁜 감성도 그 수준이 높아 그 피해도 상상을 초월하고, 이성적 에너지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이성적 에너지가 너무 강한 아이는 무엇이든지 시비를 걸어 따지려 들며, 자기 잘난 맛에 산다. 인간미가 떨어지며, 정이 안가며,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한다.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 커서는 모든 것을 이해타산적으로 계산하여 행동하는 불효자가 될 수도 있고, 정서가 메마른 차가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사는데 재미가 없다. 이성적 에너지는 앞뒤가 논리정연하여 맞아 일은 잘할 수 있고, 공적인 큰일을 하는데 적절한 에너지다. 흥분을 가라앉혀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유도하여 위기상황을 잘 모면하게 해주고, 앞날을 예측하고 수학적이고 계획적인 일을 문제없게끔 잘 처라할 수 있는 에너지다. 개인적으로는 손해를 보지 않게끔 조절할 수 있고, 이기적인 에너지다.

이성적 에너지보다 감성적 에너지가 사람을 풍요롭게 만든다.

시력은 진하기다. 시신경과 빛과의 접속이다.

수정체를 통해 빛을 시신경에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 시신경이 빛과 접속하려 노력한다. 그 진하고 선명한 빛을 느끼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시력에 있어서는 바늘로 들어가라! 그리고 표현하라! 얻을 것이다.(관심-이성) 자신의 바늘에 감성을 실어라! 바늘느낌을 잘 보이는 상(진짜상)과 초점을 맞춰라! 가장 선명히 보이는 느낌을 알고, 현재 보이는 상과 일치를 시켜라! 선명한 상과 색의 농도를 맞춰라! (바늘로 색을 칠하라! 바늘 끝에 색을 집어넣어 퍼져나가게 하라!)

들어간 바늘 끝에 감성적 에너지를 사용하여 흥분을 일으키며 신경을 쓰고, 점차, 집중하며, 몰입을 하고 최후에는 미치는 것이다. 그 작고 훌륭한 바늘에 미치고, 거기서 나오는 그 색깔의 진함에 미치는 것이다. 그 색깔의 진함에 온 정신과 마음이 풍덩 빠져 죽는 것이다. (예, 미치도록 푸른 하늘, 미치도록 아름다운...미치도록 행복한.,. 미치도록 재미있는.., 미치도록 (축구?)를 하고 싶은... 미치도록 그리운, 미치도록 감동, 사랑...등등)

한 예로 프랑스를 구한 잔다르크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차원이 높은 단계를 접한 것이다. 그리고 미쳤다. 감성적 느낌의 수준이 높으므로 미칠 수 있었다. 이성적인 에너지가 감성적 에너지보다 강했다면 신의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분석하고 현실적으로 판단해 스스로 자정(自淨)하였을 것이다. 수준이 높았으므로 신의 뜻을 구현하느라 신명을 다하고 나라를 전쟁으로부터 구한 영웅이 된 것이다.

스페인의 피카소는 그림에 미쳤다. 한번 방에 들어서면 3일 동안을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밤낮을 구분 못할 정도로 그림에 몰입단계를 넘어서 미친 것이다. 그 그림에서 나오는 작가정신과 정신적 에너지를 느껴보아라!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이렇게 미친 사람만이 가장 우수한 결과물을 창출하는 것이다.

피카소

인물 > 미술 > 프랑스미술

... 그려낸 세기의 대벽화 《게르니카》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통곡하는 여인》도 이 무렵의 작품이며 이때부터 피카소 특유의 표현...

출처 : 두산백과사전 EnCyber

미친단계는 정신과 육체가 모두 작품에 무르 녹아 밖으로 그 에너지가 표출되는 단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도 미친 에너지가 들어있다.

자신이 기분이 않조으면 그림이 슬퍼보이는 모습으로 보이고 자신이 기분 나빴을 때 보면 조롱하는 것처럼 야릇한 미소가 보이며 즐거울때는 기쁜 모습등 자기 심리에 따라 그림이 달라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인물 > 미술 > 이탈리아미술

1452년 4월 15일 피렌체 근교의 빈치에서 출생하였다. 공증인 세르 피에로의 서자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카타리나(Catarina)라는 이름...

출처 : 두산백과사전 EnCyber

이순신 장군의 명언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 것이다.> 도 이성적 에너지가 아닌 감성적 미친 에너지의 강력함을 느끼고 한 것이라 생각된다.

선명히 보이는 가장 우수한 실체의 상에 미쳐라! 그 실체에 미쳐서 그 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우수한 시력을 도출하여 줄 것이다.

진품을 알아야 가짜의 허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진짜실상의 진하고 선명한 영상에 미친다면 시력이 나빠서 보이는 허상에 어찌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바늘에 감성적 에너지를 실어서 미치도록 폭발시켜라! 진짜 실상에 가까운 자기상을 볼 것이다.

그 실체의 진하고 선명함이여! 그 색에 미쳐 내 눈 바늘에 색을 넣어 흐린 상에 색을 칠한다. 칠하고 또 칠하고...그 색이 나올 정도로 칠한다. 그 환상적인 색에 미쳐, 내 눈이 그 색을 내기 위해 위대한 화가의 열정으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나의 눈의 뛰어남이여! 나의 정신의 뛰어남이여! 분명 이루고도 남을 것이다.

시력치료에 있어 시력의 호전양태의 시력의 수준 차는 자기화 된 보는 것의 느낌과 인식의 수준차이이며, 정신의 감성적 에너지의 수준차이로 인한 결과물의 차이인 것이다.

정신이 가미가 된 모든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상기내용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일에 잘 적용하여 힘써 배우고 기르면 그 아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는가!

<양원장 주>잔다르크의 그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보자!

신의 목소리에 미쳐 숲 속을 맨발로 뛰어 다닌다.

<신이시여! 이 가난한 농부의 딸이 어떻게 신의 뜻에 따라 나라를 구하란 말입니까?>

컴퓨터 게임 같으면 중간에 신을 만나면 파워 업그레이드되어 실력이 증진하고 칼에서 광선이 나간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신은 <나라를 구하라!>말 한마디만 남겨놓고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오직 스스로 아무 도움 없이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당시는 전쟁 상황이었으므로 싸움 잘하는 것이 짱땡이다.

멋진 칼도 없다. 막대기로 신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 죽으라고 연습을 한다. 제일 무서운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미친 사람한테는 안 된다. 미친 사람을 만나면 물불가리지 않고 목숨도 아까워하지 달려드는 사람에게 자식 걱정, 내 몸 걱정, 두려움과 망설임 피해 의식 등 생각이 많아지고 행동에 제약이 생기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불안감도 생긴다.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미친 에너지가 발동하였으므로 한번 휘두르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나무가 쓰러지고 바위가 쪼개진다. 더구나 신의 권능 즉 백을 뒤에 업고 행하는 행위는 말 그대로 무시무시한 파워다.

그 후 실력이 수준에 이른 잔다르크는 프랑스 진영에 들어간다.

<저 나라를 구하라는 신명을 받고 왔습니다. 저를 군사로 써 주세요.>

모두 웃는다. 전쟁터에 키도 작은 여자가 뭘 하겠느냐는 식이다.

<집에 가서 빨래나 하고 밥이나 해라.> 모두 낄낄거리며 웃는다.

잔다르크 왈 <저를 시험해 주세요.>

귀찮다는 듯이 야 너 한번 테스트해봐라! 웬걸 손한번 제대로 못쓰고 쓰러진다. 야! 너! 역시 마찬가지.. 좀 실력 있는 네가 한번 해봐. 이 역시 초전박살이다. 신의 파워와 미친 에너지의 수준 높은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이 광경을 지켜본 프랑스 군인은 싸움을 워낙 잘하니 군사로 써준다. 주변 군사들은 잔다르크에게 모두 붙는다. 그래야 살아날 확률이 높으므로...

전쟁에 공훈을 세우면서 지휘가 높아진다. 부대장...대장....

이 집단은 잔다르크를 따르므로 미친 에너지가 집단으로 발동한다. 또한 신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신의 군대가 된다.

하나만 미쳐도 무시무시한데 집단으로 미쳤으니 그 누가 이기겠는가?

백전백승 승승장구하며 지휘가 올라가다 총사령관이 된다. 결국은 영국을 물리치고 지긋지긋한 백년전쟁을 종식시킨다. 잔다르크는 일약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떠오른다. 신의 뜻을 구현한 영웅중의 영웅이 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잔다르크에 붙는다. 재물도 바친다. 더구나 신의 듯을 실현시킨 사람으로 신까지 추앙하게 되며 사람들 마음까지 가져간다.

왕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 개털이다. 사람뺏겨, 재산뺏겨, 존경심도 다 빼긴다.

그대로 나둬서는 왕 노릇 못해먹는다. 죽여야만 자신이 산다. 그래서 마녀로 몰아 화형식을 해버린다.

동양사회에서는 토사구팽 꼴이다

토사구팽

문화예술 > 문학 > 언어 > 언어일반 > 속담 및 고사성어

兎 : 토끼 토死 : 죽을 사狗 : 개 구烹 : 삶을 팽이 말은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재상이었던 범려가 남긴 말이었다. 월라나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패권을 차지하게 되자 월나라 왕 구천을...

출처 : 두산백과사전 EnCyber

그러나 개인적 수준이 미친수준 최고에 달했으므로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는 것이다.

잔 다르크

인물 > 군사 > 외국군사

... 옷을 입고 선두에 서서 지휘하는 잔 다르크의 모습만... 랭스까지 진격한 잔 다르크는 이곳 성당에서 전통적인 전례에 ... 영국의...

출처 : 두산백과사전 EnCyber

어떤 물체를 보던 바늘을 사용한다. 눈으로 보는 모든 물체에 항상 바늘선 바늘점을 넣어 보고 인식하려는 좋은 습관은 자신을 부지부식(不知不識)간에 조금씩 정상의 시력의 위치에 올려놓을 것이다.

나중에 개발된 축소경을 바늘 대신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상기 기록한 정신적 에너지가 뛰어나고 자기화를 쉽게 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정상의 시력에 오른다.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하여 보는 방법

1.무언가는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 것에 <무엇일까?> 하는 물음표를 찍어라!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호기심의 에너지가 자신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2.들어가라 표현하라 얻을 것이다.-관심 (양원장 격언)

눈이 바늘이므로 바늘로 들어가라. 바늘은 <보다작게(가장작게)>에 최고수준이며, 가장 실용적이며 효율 적인 바늘이 들어가므로 <자신이 최고다!>는 자신감과 <내 바늘이 어떤 바늘인데 이것을 못 보는가?> <어디서 감히!>의 자존심을 잊지 말고 보려고 해라!

보면 모조건 자신의 바늘 크기를 인식하려고 해야 한다.

자신의 바늘수준의 본 모습을 표현하고 인식할 때 진정 얻을 것이다.

3.바늘 끝에 느낌을 살려라!

바늘은 자신의 눈이며, 느낌만이 자기 것이 된다. 느낌이 강할수록 자기 것이 분명해 진다. 좋은 느낌의 최상이 감동의 에너지로 보아라. 느낌을 강력하게 하려면 보이는 것에 섬세하고 정교한 사실적 조그만 표현(이성적에너지)을 집어넣어 인식을 강하게 만는다.

4.마음의 정교하고 섬세함을 바늘 끝에 싣는다.

정교하고 섬세함은 잘하고자 하고, 모르는 것을 알고자하는 강력하고 정확한 마음에서 온다.

일인자의 마음을 배워라. 그 마음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면 최고수준이 될 것이다.

5.비슷한 것을 찍지 마라. 보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대충대충하지 마라. 수준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집중력과 신중의 에너지로 본다.

인사나 사물을 정확히 보는 습관은 마음의 치밀함에서 온다. 반드시 집중력이 있어야 하며,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자 눈이며 보는 것이므로, 이 정신적 에너지가 쌓이고 쌓이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고 속도 있게 사물을 볼 것이며, 저절로 정상이상의 시력을 가질 것이다.

6.설사 틀렸다고 해도 성질내거나 긴장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처음부터 다시 하라.

모르고 넘어가지 않는 정신, 포기하지 않는 마음, 굴하지 않는 정신인 담력이 자신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힘들고 어려우나 보다 훌륭한, 나은 방향으로 가려면 이 에너지가 뒤받침 없이는 성취하기 힘들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도전하여 자기 것을 만드는데 용맹 정진하여라.

<수단과 방법이 옳고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실이 있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뜻을 알 것이다.


*시력이 더 좋아 지는 거리를 지키는데 필요한 정신적 에너지

1.선명히 보이는 거리를 피하고 조금 번져 보이는 거리로 책을 본다.

호기심을 가지고 보아라. 책이란 전과 후가 내용이 있음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앞뒤를 맞추다 보면 신경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내용을 읽어나갈 수 있다. <감동>

글씨가 잘 보이는 곳에 보면 시력이 자기수준 아니면 그 보다 못한 수준에서 행위를 하므로 시력이 떨어진다. 좋아지는 거리를 지키고 좋아지는 좋은 수단인 바늘을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2. 그 거리에서 글자하나의 첫 자음에 바늘점이나 한줄 글에 가운데에 바늘선 크기만 보면서 읽는다.

정상시력크기보다 작은 바늘에 대한 자신감, 자존심, 정교, 섬세함을 가지고 본다.

3.잘 안보여 모르는 글이 나올 때 절대 가까이 가지 않는다.

또한 조금 잘 보이면 그 거리보다 먼 거리에서 본다.

자기시력수준이상에 대한 거리를 반드시 지키며, 잘 보려는 담력, 신중. 지혜, 집중력. 자존심,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시력치료에 임하며 생활은 반드시 시력이 좋아지는 방법인 <보다멀리 보다작게(가장작게)>에 입각하여 바늘, 축소경을 사용하여 상기기록한 정신적 에너지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진득하게 습관적으로 사용할 줄 알면, 시력은 점점 좋아질 것이다. 눈이 좋아지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극진하게 치료에 임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로 시간과 고생을 절약할 수 있다.

 

1.거리에 따라 원근이 있다.

평면유리 경우 빛이 유리를 통과하여 항상 같은 크기의 상이 맺힌다.

그러나 돋보기의 경우는 빛이 돋보기를 통과하여 상은 축적되므로 작게 맺힌다.

풀어서 설명하면 돋보기의 가까운 상은 크게 맺히고 돋보기에서 멀어진 상은 작게 맺힌다.

우리 눈이 그러한 상을 인식하므로 거리에 따라 원근이 생기며 그 크기가 가까울수록 크게 맺히고 멀수록 작게 맺히는 것이다.

높은 산이나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이나 건물이 굉장히 작아 보이는 이유도 눈이 돋보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2.눈이 돋보기를 사용한 어느 동물이든 외부 사물크기를 인식하는 것은 같은 크기로 느낀다.

외관적 축적율은 도수에 상관없이 돋보기는 모두 같다. 외부 물체는 변함없이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돋보기인 눈을 가진 동물도 그 돋보기 룰이 그대로 적용되므로 사물의 크기는 같아 보인다.

돋보기란 초점거리와 실상크기의 거리의 비율을 1:3으로 만든 것이며 이러한 돋보기는 두께에 관계없이 눈알의 크기에 관계없이 돋보기를 장착하고 있으므로 외부 사물을 그 비율로 보기 때문에 외부 사물의 크기는 똑같이 보이는 것이다.

<112. 현재 만든 축소경의 축소율과 시력에 맞는 거리 <눈금자>에 대하여> 참조 http://cafe.naver.com/sukchul67/259

3.거리에 따라 돋보기의 외관적 축소율(외부 사물이 거리에 따라 보이는 축소율) 이 적용된다.

망막에 맺히는 초점크기는 돋보기 도수에 따라 다르게 맺힌다. 돋보기 도수가 높을수록 작게 맺힌다.

사람인 경우 거리에 따른 외관적 축적율=X/30cm<X=외부거리 단위cm>(양원장 공식)

사람이 30cm를 기준으로 삼아서 외부사물을 관찰하여 지식화시켜 인식하였으므로 이러한 공식이 나온다. 그러나 동물의 경우 관찰대상이므로 이러한 공식에 관계없이 사람 눈과 똑같이 거리에 따라 작게 보이는 것이다.


4.눈알크기에 따라 돋보기의 배율이 달라진다.

돋보기의 배율이 높을수록 눈알이 작아진다.

시력은 돋보기의 배율이 높을수록, 그것을 장착하는 눈알이 작을수록 시력이 좋다.

(반대로 말하면 눈이 큰 동물일수록 저배율을 사용한다. )

돋보기의 배율이 높을수록 초점거리가 짧아지므로 망막에 상이 정확히 맺히게 하려면 눈알이 작은 동물일수록 고배율의 돋보기를 장착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고배율의 돋보기를 장착하는 동물은 시력이 엄청나게 좋다. 왜냐하면 돋보기에서 보이는 초점크기의 상이 돋보기의 도수가 높을수록 작게 맺히고 그 상이 작을수록 선명하고 밝고 진하기 때문이다. 빛을 모으는 돋보기의 특성상 집중력(한곳에 모으는 힘)은 도수가 높을수록 작은 상을 만들고 상이 작을수록 위력적이다. 종이를 도수에 따라 돋보기로 태워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두께가 두꺼운 돋보기가 금방 탄다. 두꺼울수록 도수가 높다.


5.안구의 돋보기 배율이 높을수록 불빛에는 취약(脆弱)하다.

안구에 돋보기를 장착한 동물은 빛을 모아 망막에 맺힌 빛을 보고 있으므로 잘못하면 망막이 타버릴 수가 있다. 스크린이 타버린 영화는 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상을 망막에 맺혀주어도 망막이 그 역할을 못하게 되면 그 뒤에 신경이 그 기능을 잃어버리므로 실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돋보기는 빛을 모으므로 불빛을 보지 않아야 한다. 약한 불빛이라도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그 위해성은 가히 높다고 할 수 있다. (햇볕, 컴퓨터, 인텐드, 가로등, 텔레비전 등등 빛이 나오는 것들)

일반 돋보기 5디홉터로 종이를 태우는 장면(네이버 그 영상사진참조)

우리 눈은 이 돋보기보다 10배 높은 도수이다(53디홉터)


6.빛이 있어야 보인다. 반면 빛이 없어야 안구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빛이 없으면 우리 눈이 사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시력이 퇴화된다. (동굴의 동물들, 땅속동물들-두더지)

반면 사물을 보이는 매 순간마다 우리 뇌가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눈을 감지 않고는 휴식을 취할 수가 없다. 어둠이 사라지는 현대인은 뇌가 예전보다 쉬지를 못하고 있다고 본다. 자연적인 생활을 하는 동물들도 정신을 못 차린다. 닭들도 때 아닌 때에 울어대고 먹을 것만 먹어대고 밤낮이 뒤바뀌고 쉬지도 못하고 운동도 하지 않은 닭에서 나온 계란의 크기는 커도 보호막인 껍질은 튼튼하지 못하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와 같이 겉은 번지르해도 속은 부실하다. 음과 양의 조화를 깨뜨린다. 자연에 역(逆)하는 현상이다. 도시의 밤의 밝은 불빛으로 인해 밤하늘에 별들도 육안으로 관찰하기 힘들다. 사람들이 낭만을 잃어간다. 빛 공해다.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현상에서 오는 닭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인지의 피곤함속에 우리들의 오감(五感)도 잃어가고 있고, 밤 낮이 뒤바뀌고 깨어잇는 시간이 많을수록(수면부족) 건강도 잃어버리기 쉽다

그 중 시각도 잃어가는 것이다. 빛과 어둠의 균형이 깨지게 함은 눈의 휴식을 잃게 만들고 밤과 낮의 생활을 바꾸고 강한 불빛에 눈을 보호시간을 줄여 시력을 쉽게 잃게 만드는 것이다.


7.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도 고배율의 돋보기가 장착되어 잇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눈이 저배율이라면 우리 눈의 크기에 초점이 맞지 않아 상이 무척 크게 맺히며 굉장히 흐린 상을 관찰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눈에 큰 물체 몇 개만 잡고 나머지는 망막을 벗어나 버린다. 그런 눈으론 세상만사(世上萬事)를 다 볼 수 없다. 그런 상을 잘 보기 위해서는 그 만큼 눈알이 커야 초점거리도 맞아 선명하게 볼 수 있고 모든 상을 다 집어넣어 한눈에 볼 수 있다.

풀어 설명하면 우리 눈의 크기에 10디홉터의 저 배율의 돋보기가 장착되었다면 축적율이 작아 모든 상을 2.4cm안에 넣을 수가 없다. 크게 흐리게 하나의 상 밖에는 넣을 수가 없다. 즉 눈앞에 잘 보이지도 않은 큰 흐린 상을 보고 살수 밖에 없다.

우리 눈 2.4cm의 눈에는 53디홉터가 정확히 수정체로부터 망막의 거리100/53=1.88cm에 아주 작은 상으로 정확히 맺히게 된다. 고배율로 축소시켜 세상만사를 보게끔 외부세계와 균형을 맞추고 있는 수준 높은 것이 우리 눈인 것이다.


8.고배율의 돋보기를 쓰는 동물(사람 포함)은 위험한 것이 있다.

상이 조금만 망막에 맺히지 않으면 굉장히 외부 사물이 흐려 보인다.

사람 눈 예)1mm앞에 맺히면 3디홉터가 두꺼워진 상태고 시력으로 보면 0.1수준이다. 동물들은 영양결핍이나 외상 빼고는 절대 시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시력이 떨어진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돔물적 본능(감성)을 잃어버리고 자연스런 삶에서 도시의 삶, 정신적인 무한 경쟁이 시작되면서, 고도의 생각의 에너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시력을 잃게 되었다. (인간문명의 발달은 연구, 공부 등 가까운 거리로 인간을 묶어 놓아 초점거리로부터 돋보기인 수정체를 무리하게 가동하면서부터 문제를 일으켜 눈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450년 전에도 안경은 있었다.)

눈이 작은 동물이 아주 높은 고배율의 돋보기를 사용하며 생존본능을 사용하여 정확히 망막에 맺히게끔 본능을 사용함으로 엄청난 시력에 털끝만큼의 오차도 없이 상이 정확히 망막에 맺혀 가장 좋은 시력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위험을 미리 감지해내고 피해가며 생존을 해 나가는 것이다.


9.오감 중에 가장 수준이 높은 우리 눈은 보호장치(保護裝置)가 잘 되어 있다.

돋보기에 해로운 빛을 가리는 눈 뚜껑.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

마찰을 피하기 위해 눈물로 항상 젖혀 있다.

수양액이 각막뒤에 있어 물의 압력을 조절한다. -안압 눈의 영양도 줌.

외부의 조그만 위험한 자극으로도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대처하기 위한 눈 감음속도-반사신경

정신적 피로, 눈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졸음.

조그만 무리해도 바로 위험신호를 알려준다. -눈 충혈, 눈부심, 시큰거림, 따가움, 건조함. 간지러움, 눈꼽 등등

시력이 떨어지는 것은

이런 보호장치에서 위험신호를 다 보내주는데 노란불이 켜졌는데도 무시하고 달리다가 사고가 나든지, 아니면 그것이 위험신호인지도 왜 시력이 떨어지는 지도 모르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다.


10.사람의 마음상태를 눈으로 표시. 생명체의 기감이 가장 살아있는 곳이 눈이다.

눈에서 빛을 내보냄-눈빛

화살도 쏨-시선

눈으로 웃고, 울 수도 있다.-눈웃음, 눈 울음.

그래도 안 되거나 상대가 모르면 주변(고개, 주름, 눈꺼풀,눈동자 움직임)까지 도와줌-온갖 찡그림, 만상, 윙크, 눈짖, 눈을 중심으로 짖는 표정 고개저음.등등.

눈의 변화의 마술사이며 속도는 빛보다 빠르며 그 표현 수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11.눈에 열이 들어가면 시력이 떨어진다. 수정체를 한 곳으로만 오래쓰면 시력이 떨어진다.

수정체는 열기운을 싫어한다. 수정체에 열을 지속적으로 가하면 수정체 혼탁이 온다. -안구건조, 백내장, 녹내장.

피로열, 스트레스열, 긴장성 열, 생각 열 등은 모양체의 긴장을 유발하여 수정체를 안으로 수축한다. 즉 두꺼워질 수 있는 요건을 갖춘다. -수정체의 이상을 초래하여 각종 시력저하를 일으킨다.


12. 1m 안에 오는 물체를 볼때 수정체는 가까운 곳을 볼 때는 두꺼워지고 먼 곳을 볼 때는 얇아진다.

큰 것을 볼 때는 두꺼워진고 작은 것을 볼 때는 얇아진다.

그런 면에서 시력이 떨어지는 주범은 오앳동안 책과 수작업, 가까운 거리에서 tv, 컴퓨터, 인텐드 시청이다.

1m안에 들어오는 물체를 보면 시력이 떨어진다. 그 가까이 보는 거리마다 그대로 수정체 두께가 적용된다. 망막에 맺히는 상이 가장 작을 때 상이 정확히 보이는데 상을 수정체에 가깝게 주면 상이 크고 흐리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 눈은 볼 수가 잇다. 수정체를 확 두껍게 하여 가장 작은 상을 만들어 낸다.

5cm의 물체를 보면-20디홉터가 두껍게 하여 가장 작은 상을 만들어 내고

10cm에서 보면-10디홉터글 두껍게 하여 사물을 인식하고

20cm에서 보면 5디홉터가 두꺼워져 사물을 가장 작은 상을 만들어 인식하며

33.3cm에서 보면 3디홉터가 두꺼워지며

50cm에서 보면 2디홉터를 두껍게 하여 본다.

보는 거리에 따라 그대로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는 것이다.

보는 거리가 얼마나 무서운 가를 알아야 한다.

가깝게 볼 수 없는 사람(노안-수정체를 두껍게 할 수 없는 사람) 대신 돋보기를 끼고 본다.


13.수정체는 움직인다. 모양체는 살아있다.

보는 거리에 따라 상의 크기에 따라 시력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자기 시력보다 멀리 보면 시력이 좋아지고

자기 시력보다 가까이 보면 수정체가 두꺼워져 실력이 떨어진다. (근시)

돋보기의 일등 명품인 가장 작은 상이 정확한 1등의 진상이다.

자기 초점크기보다 더 작은 상을 보거나 가장 작은 부위를 인식하려고 하면 무한대로 시력이 좋아지고

자기 초점크기 보다 더 못한 큰 상을 즐겨보면 시력은 무한대로 떨어진다.

멀리 있는 것은 작은 상이고

가까이 잇는 것은 큰 상이다.

둘을 만족하는 것ㅎ이 바늘이다.


14.수정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은 안경이다.

움직이는 돋보기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 안경이다. 수정체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외부 힘을 빌려 잘보이게 만든다면 봄날은 오지 않는다. 끝까지 외부의 힘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좋은 결실을 얻으려면 외형은 실물보다 크게 잡아야 하며 그 내용면인 심법은 그 반대로 해야 한다. 즉 작고 섬세하게 해야 한다.

큰 강물은 작은 물줄기가 모여서 되듯, 땅에 심어진 씨앗이 가장 잘 자라려면 반드시 세세한 보살핌과 정성을 다하는 좋은 외부적 환경을 받아 그 씨앗의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져서 살이 붙고 영양을 얻어 그 꽃과 과일을 풍성하게 맺게 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不入虎穴 安得虎子)

인터냇 해석<뜻하는 바를 이루려면 반드시 그에 마땅한 일을 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당하는 모험과 용기가 필요함을 말한다.>

(양원장 해석)크게 얻으려면 그 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인 면이고 노력한 만큼 얻은 것일 뿐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새끼보다 더 큰 것을 얻어야 노력이상으로 얻는 것이 아닐까? 이것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은 작을 것을 보고 크게 얻는다. 원효는 해골에 찬 물을 보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이치를 얻었고 뉴튼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萬有引力)을 얻었고

비유할 바는 아니지만 양원장은 본인 시력이 조금 좋아지는 것을 느끼고 시력치료법을 개발하였다.(ㅋㅋ)

임상실험결과 축소경을 들여다보고 실제 사물을 보면 실제보다 크게 보인다고 말을 한다.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본인이 원하는 답은 진하게 선명하게 번지지 않고 보인다는 것을 듣고 싶었다. 환자는 분명 잘 보인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다.

만원경과 축소경의 수준을 비교해 보면 만원경이 수준이 높다. 왜냐하면 멀리 조그만 것도 다 잘 보이므로.. 그러나 맨 눈으로 볼 때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축소경을 들여다보고 맨 눈으로 볼 때는 만원경처럼 사물보다 조금 크게 보인다는 것이다. 수준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그 이면에는 축소경이라는 아주 작은 것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준 있는 결과물을 창출할 때는 <표현(결과)은 크게, 마음은 작게>의 이치를 이 같은 축소경으로 통해서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축소경을 오래 들여다보면 눈이 조이는 느낌이 든다. 뻐근하다. 그리고 잘 보인다. 근시인 경우 수정체는 얇아져야 하고 망막에 맺히는 초점은 작아야 상이 잘 보인다.

빛을 이용해 사물이 우리 눈을 통해 수정체의 변화를 통해 망막에 상이 잡히며 시신경이 이를 인지해 대뇌에서 인식한다. 반대로 대뇌의 정확하고 좋은 인지능력이 정밀자인 수정체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움직여서 망막에 좋은 상을 맺히게 한다.

어두운 곳에 사는 두더지나 동굴생명체가 시력이 퇴화되는 이유는 잘 보려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잘 보려 해도 빛이 없으므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환경에서는 다른 기능이 더 필요하므로 그 기능이 더 발달한다. 초음파라든지, 피부감각이라든지, 청각이라든지..등등

사람도 먼 장래에는 시력이 퇴화하고 말 것이다. 멀고 작게 볼일이 없으니. 실내생활에 가까운 사물에 작업을 해야 하는 시대이니 말이다. 오히려 두뇌는 더욱 발달하여 더 좋은 눈(의안)을 개발하여 그것을 사용할 것이다. (본인의 생각이 너무 비약적인 것이 아닐까?)

우리 눈은 돋보기이므로 가장 작은 상이 맺을 때 가장 선명한 상이 나타난다.

우리 눈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좋은 눈을 수준 있는 눈을 원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므로

시신경은 작고 선명한 상을 원한다. 수정체를 움직이는 모양체는 그러한 상을 만들기 위해 유능한 투수가 다양한 구질로 타자와 승부하듯 변화가 무쌍하며 자유자재로 변화하고 탄력성 있게 움직인다.

멀리 있는 작은 사물을 가장 사물이 잘 보려면 만원경을 사용하여 확대하여 보면 된다. 가까이 있는 작은 사물을 잘 보려면 확대경이나 현미경을 쓰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사물에 의존하여 보는 것이므로 휴대하기 불편하고 외부의 다양한 변화나 움직이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눈앞에 아무것도 안 걸친 자연스런 우리 눈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눈의 심법(보다작게(가장작게) 보다멀리)인 시신경에서는 사물을 작게 보아야 하며 변화의 중심인 모양체의 근력은 탄력성과 변화를 부려야 하므로 그 변화의 외부사물은 확대경처럼 잘 보아야 하므로 크게 보는 것이 가장 좋은 상을 인지시킬 것이다. 그래서 바늘로 들어가서 사물을 확대하여 보라가 가장 좋은 상을 맺히게 하는 비법인 것이다.

접시돌리기를 할 때 균형 있게 접시가 떨어지지 않고 잘 돌려면 다음의 조검을 만족해야한다..

1.막대인 축이 흔들거리지 않아야 한다.

2.회전력이 있어야 한다.

3.처음에 안정적으로 접시를 떨어뜨리지 않고 돌리려면 회전축이 접시쪽이 커야 한다. 반대로 손은 회전축이 작아야 한다.

4.나중에는 손을 떼고 접시의 회전축이 작아도 저절로 돈다. (정상적인 상황)


사람 눈도 마찬가지다.

손잡이를 망막으로, 접시를 수정체로, 막대의 회전력을 인지능력으로 비유한다면

손잡이인 망막에 맺히는 초점이 작아야하며, 그 축의 흔들림이나 움직임이 최소한 작아야 한다.

안정적으로 돌려면 반대로 수정체는 얇아져야 한다. 즉 면적이 넓어져야 한다.

수정체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모양체의 기능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지능력인 회전력이 강해야 한다. 그래야 사물이 정확하고 확실하게 보일 것이다.

그래서

내 눈은 축소경이다.

대뇌의 인지 능력(시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재미가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를 주는 것이 좋다.

고배율의 축소경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 경우 시력이 웬만큼 나빠도 진하고 선명한 영상이 도출되므로

바른 상인 잘 보이는 사물을 인식하기에 좋고 대뇌에서 그런 정상적인 상을 기억하고 그것을 바라고 있고

작은 초점크기와 초점거리를 쓰므로 수정체의 움직임을 활성화한다.


1.물체가 고정되어 있을 경우는 축소경을 이용하여 사용자가 그 사물의 크기를 변화시킨다.

축소경을 움직여 크기에 변화를 주면서 인지하려한다.

즉 보는 방법(심법)이므로 실제 사물을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축소시키면서 보아야 한다(보다작게(가장작게) 보다멀리) 배율의 변화를 보이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축소경(실제크기의 약 300~400배 축소)으로 보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축소를 시키면서도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인지하려고 노력한다. 즉 손잡이인 망막의 초점을 최소한 작게 하면서 축이 흔들거리지 않게 회전력(인식)을 최대한 하려한다.


2.변화가 있는 고정된 물체는 축소경의 사물크기를 바늘크기인 1cm 영상으로 고정시키고 관찰하며 인식한다.

축소경을 통해 작은 영상을 만들어 놓고 재미있는 변화가 되는 물체(텔레비젼, 영화)를 보고 인지하려고 하는 것이 좋다. 1cm 영상은 바늘로 그릴 때만 가능한 영상이므로 그런 영상을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바늘 쓴 효과가 난다. 영상의 크기가 작을수록 효과는 뛰어나나 인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려운 것을 해내는 사람이 수준이 제일 높다 할 것이다. 눈의 초점이 작게 써야만 축소경에 비친 사물을 인식할 수 있으므로 저절로 초점이 작아진다.

3.맨눈으로 보는 경우는

실제 인지하려고 하는 사물로 들어가서 바늘크기를 보며(망막의 최고수준 초점) 확대를 시키는데 그 사물크기 보다 더 크게 확대시키려고 하여야한다.(사물을 가장 안정적으로 보는 접시쪽의 큰 회전력)

그래서 사물을 더 정확히 인지하려할 때 눈을 부릅뜨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찡그리고 보는 것은 시력이 좋아지지 않는다.(개론11번 참조) 찡그리고 보는 것의 해결책이 열린 것이다.

곱고 부드럽고 매끈하고 아름다운 상태의 눈이 정상적인 시력이라면

시력이 떨어진 상태는 표면이 크고 거칠고 두껍고 매끄럽지 못한 상태와 같다.

책이나 물체를 가까이 보는 것은 그 사포의 눈금의 날이 크고 거친 데다 눈을 문대는 것과 같다. 그런 행위로 말미암아 눈 자체도 성능이 떨어지고 거칠어지고 표면의 상태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즉 초점크기가 커져서 시력이 떨어진다.

먼 거리의 작은 것을 보는 것은 그 눈금이 작고 고운 사포 날을 쓰는 것과 같다. 쓰면 쓸수록 거칠어진 눈도 곱고 부드럽고 매끈한 작품이 되듯 눈의 성능이 살아나고 시력이 살아난다.

현금의 아이들의 생활은 거의 실내생활에 크고 거친 사포로 눈을 문대는 행위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눈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나마 축소경을 자주 들여다보면 멀고 작은 상이 저절로 잡히므로 시력이 조금씩 회복되므로 잘못된 가까운 것만 보는 실내생활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고 작고 먼 거리를 보는 것이 얼마나 시력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바늘로 들어가서 사물을 실제크기 보다 더 크게 인지하려고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며 축소경을 이용하여 <보다멀리 보다작게(가장작게)>를 쉽게 응용하며 가장 중요한 자기화를 시키려면 그 축소된 상을 자기 스스로 영상을 그려서 자기가 스스로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며(자기화가 잘된다) 그러한 행위는 일반 정상인이 편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 눈에 피로를 동반하지 않는 것에 반하여 약한 시력을 가진 자가 좋은 시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접시를 지속적으로 고속 회전시키는 힘든 작업과 같으므로 고도의 정신력과 육체적 피로를 동반하므로 약력의 힘을 빌어서 침 약 바늘(노력) 축소경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십분활용하여 잘보이지 않는 시력의 고통에서 빠른 시일에 시력을 회복시켰으면 한다.


일상적으로 사물을 신경을 쓰지 않고 보는 경우는 바늘을 쓰면서 보고

축소경을 이용하여 사물을 볼 때는 접시 돌리는 행위처럼 할 것이며

약을 먹어서 도움을 받을 경우는 앞의 접시 돌리는 행위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복용 후 맹훈을 10~20분하면 보다 빠른 시력회복에 전전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