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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 THE JESUS MYSTERIES


삼위일체 교리에는 결정적으로 다신교 교리가 담겨 있다.[각주:1] 하느님이 "삼위three persons" 로 나타날 수 있다는 개념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지고의 유일한 하느님의 여러 국면에 대한 이교의 개념과 일치한다.
 고대 이집트 문헌에서 하느님은 이렇게 선포한다. "나는 하나이면서 셋이 된다."[각주:2]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최고신은 모든 특성을 초월한 하나Oneness이며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존재였다.[각주:3]

구약에서 여호와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각주:4] 그러나 영지주의의 『요한의 비밀서』에서는 그것을 "광기" 라고 일컬으며 이렇게 평했다.

그렇게 선언함으로써 그는 다른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했다. 다른 신이 없다면 짍투할 일도 없지 않겠는가?[각주:5]

영지주의 교사 케르도Cerdo는 이렇게 설명했다.

법으로 선포된 하느님이나 예언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알려져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각주:6]

이교도 미스테리아 현자들은 단순한 믿음이나 소신을 멸시했다. 그들이 관심을 둔 것은 "앎" 이었다. 플라톤은 이렇게 주장했다. 믿음은 현상에만 관심을 두는 반면, 앎은 이면의 실재를 꿰뚫어 본다고.[각주:7] 

클레멘스는 이렇게 가르쳤다.

믿음은 초석이다. 그노시스는 그 위의 건축물이다.[각주:8] 믿음은 그노시스를 통해 완벽해진다.[각주:9] 안다는 것은 믿는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각주:10]
그노시스는 믿음을 통해 받아들인 것의 증거다.[각주:11]

"어떤 함정" 과 "장벽과 불가능성" 을 성서 안에 함께 엮어 놓은 것은 독자가 "문자에 얽매여 더욱 신성한 의미를 터득하지 못하는 것" 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각주:12]

 예수 이야기는 혁명가 메시아들이 단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재앙만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한 대안으로, 혁명에 대한 환상이 깨진 유대인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 헬레니즘화된 유대인들은 민족 전통에 충실하고 민족주의적인 포부도 지니고 있엇지만, 유대교 열심당원들을 끔찍이 혐오했다. 현대의 서구화된 무슬림이 광적인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을 혐오하듯이. 그들은 열심당이 그들 나라에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실상 CE 70년의 사건은 그들이 겪은 재앙 가운데 최악이었다.
 당시 절망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각주:13] 필요할 때 민족주의적 메시아가 도래하지 않은 것을 경험함으로써, 결국 예수 미스테리아의 신비한 메시아가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산산조각이 난 삶의 의미를 회복하고, 민족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을 되살리는 한편, 더 큰 이교도 사회와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새로운 메시아가 제시된 것이다.

  1. 이슬람은 기독교를 세 신을 숭배하는 다신교로 본다. "하나님 …… 을 믿되 삼위일체설을 말하지 말라." 라고 충고하는 『꾸란』 수라 4장 171절을 보라.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관점과 달리, 무슬림들은 조심스럽게 무함마드가 신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을 제외한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다" 라고 말한다. [본문으로]
  2. Wallis Budge, Egyptian Religion (1899), 24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3. 플라톤, 『티마이오스』, 3.28. 즉 "이 우주의 창조자이자 아버지를 알게 되는 것은 사실 어려운 과제이고 그를 알게 된 후 모든 이에게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본문으로]
  4. 「출애굽기」 20장 3~5절. [본문으로]
  5. 『요한의 비밀서』 Pagels, The Gnostic Gospels, Penguin Books, 1979, 56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6. 이레나이우스, 『이단 논박』. 1.27.1. Barnstone, W., The Other Bible, HarperCollins, 1984 [본문으로]
  7. Plato, Phaedrus and Letters vii and viii, 53쪽. 이 판본의『파이드로스』편집자는 플라톤이 에피스테메 곧 '앎' 과 독사 곧 '역견' 을 반복해서 비교한다고 적고 있다. 참된 지식은 오직 순수 철학을 추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감각적 세계는 언제나 독사의 원천일 뿐이다. [본문으로]
  8. Clement, Stromata, 6.26. [본문으로]
  9. Clement, Stromata, 7.55. [본문으로]
  10. Clement, Stromata, 6.109. [본문으로]
  11. Clement, Stromata, 7.57. [본문으로]
  12. Origen, On first principles, 4.2.9. Doran, R., Birth of a Worldbiew, Westview Press, 1995 [본문으로]
  13. 『에스드라 서』는 이 당시 유대인들의 고통을 생생한 그림으로 그렸다. 즉 "우리 사제들은 살아서 불태워졌고 레위 지파는 포로로 붙잡혔으며, 우리의 처녀들은 강간당했고 우리의 아내들은 능욕당했으며 우리의 독실한 남즈들은 목숨을 빼앗겼고 우리의 아이들은 유기되었다. 우리의 청년들은 노예가 되었고 우리의 강인한 전사들은 무기력하게 되었다." 『에스드라 2서』10장 22절을 보라. 이것들은 유세비우스가 나중에 재미를 숨기지 않으면서 자세히 말할 바로 그 장면들이다. Eusebius, History of the Church, Penguin Classics, 1965, 65쪽 이하를 보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