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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화

[Ki-Z 사람] 11월 1일, 유재하-김현식 그들이 또다시 그립다

[쿠키 문화한 해가 지나면 당연히 찾아오는 11월 1일이지만, 가요계 시선으로 보면 그 당연함이 한편으로는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남는 11월 1일이다. 한국 가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명의 천재 뮤지션이 세상을 떠난 날이기 때문이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으로 단 한 장의 유작 앨범만 남긴 채 1987년 11월 1일 교통사고로 요절한 故 유재하와 꼭 3년 뒤인 1990년 간암으로 세상을 등진 故 김현식이 그들이다.

◇ 한 장의 앨범으로 가요계를 바꾼 유재하

1962년에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유재하는 대학 졸업반인 1984년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에 키보디스트로 참여한다. 이후 85년에 ''여행을 떠나요''로 대표되는 조용필의 7집 앨범에 불후의 명곡 ‘사랑하기 때문에’를 만들며 가요계에 첫 발을 내딛는다. 이어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밴드에 들어가 ‘비처럼 음악처럼’이 들어 있는 김현식의 3집 앨범 ‘가리워진 길’을 만들었다.

유재하는 밴드 활동을 정리하고, 1987년 8월 한국 가요계를 바꾼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이자, 유작이 된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한다. 당시 이 음반은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심의에서 반려됐다. 그러나 유재하는 음반이 발표된 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11월 1일 한남대교 북단 근처 강변도로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가던 중 가로수를 들이받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 고작 만 25세였다. 이런 유재하가 남긴 유작 앨범은 이후에 “평가조차 할 수 없는 음반”의 존재까지 올랐다.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에서는 들국화의 ‘들국화’에 이어 2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져가던 유재하의 존재는 추모 10주년에 맞춰 발표된 헌정 앨범 ‘다시 돌아온 그대위해’를 통해 재조명됐다. 김현철이 프로듀싱을 한 이 앨범에 참여한 가수들은 나원주, 유영석, 한동준, 신해철, 유희열, 일기예보, 김광진, 김동률, 정재형, 이소라, 이적, 여행스케치, 고찬용, 조규찬. 이들의 면면만 봐도 유재하가 후배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뒤를 이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출신들이 ‘유재하 키드’로 자라고 있다.

유재하가 또 한번 대중들에게 강하게 어필된 것은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유재하의 노래 ‘우울한 편지’가 삽입되면서다. 용의자 선사에 오른 박해일이 비가 올 때마다 라디오 방송국에 신청한 이 노래로 인해 유재하의 음악은 또 한번 재조명됐다.

사망 23년이 된 올해도 여전히 유재하는 우리 곁에 돌아온다. 영화 <맛있는 인생>에 유재하의 곡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가 삽입되는 것이다. 이 곡은 극중 20여 년 전과 현재를 이어주는 일종의 다리 역할이다. 마치 유재하의 곡들이 현재의 후배 가수들에게 영향을 미치듯 말이다.

김동률은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유재하의 죽음으로 대한민국 발라드는 10년 이상 퇴보했다고 생각한다”. 단 한 장의 유작 앨범을 발매한 선배 가수에 대한 당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중 한명의 평가다.

◇ 손님처럼 와서 세상에 ''노래'' 남기고 간 김현식

언제부터인가 김현식에 대한 호칭은 ‘가객’ (歌客)이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김현식이 손님처럼 이 세상에 들렀다가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뒤흔든 노래를 남겨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1958년생인 김현식은 어릴 때에는 공부는 물론 아이스하키와 기타 등 다방면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다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고, 경기고에 낙방하자 음악으로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고, 밴드부가 유명했던 명지고에 입학한다. 그러나 선배들에게 구타를 등하는 등의 곤혹을 치루다 밴드부에서 쫓겨난 김현식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다가 무명 통기타 가수들과 함께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점차 이름을 알린 김현식은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수개월간 시련을 겪게 된다. 이는 앨범 발매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봄여름가을겨울’을 타이틀로 한 ‘김현식 1집’은 녹음이 끝나고 2년이 지난 80년에나 세상의 빛을 보았다. 음반사 측이 대마초 사건으로 인한 이미지를 염려해 발매 시기를 미뤘던 것이다.

김현식은 ‘떠나가 버렸네’ 등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후, 본격적으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사랑했어요’가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서다. ‘얼굴없는 가수’로 칭해지면서 언더그라운드 스타가 된 김현식은 자신이 직접 밴드를 만들어 3집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2인조로 활동하고 있지만, 당시 결성된 밴드가 김종진, 장기호, 전태관 등으로 구성된 봄여름가을겨울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3집은 김현식이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가수가 아닌, 뛰어난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수임을 증명했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 작업에 참여했던 웹진 ‘가슴’ 김학선 편집인은 “무엇보다 이 앨범을 가장 빛나게 해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김현식의 보컬이었다. 이 앨범에서부터 완연하게 거칠어지기 시작한 김현식의 목소리는 ‘빗속의 연가’나 ‘비오는 어느 저녁’ 같은 블루스 스타일의 곡들에서 더욱 빛을 발했으며, ‘비처럼 음악처럼’ ‘눈 내리던 겨울밤’에서 보여준 김현식만의 ‘소리 지르기’는 그가 얼마나 훌륭한 보컬리스트였는지를 그대로 증명해주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유재하와 같은 날 사망한 김현식을 추모하는 작업은 올해도 이어진다. 특히 추모 2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다양한 형태의 헌정 음반과 무대 그리고 영화가 제작된다. 김장훈은 헌정앨범 ‘레터 투 김현식’을 발표한다. ‘비처럼 음악처럼’ ‘내사랑 내곁에’ ‘추억 만들기’ 등 11곡을 담았다. 지난 9월 체코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녹음작업을 진행했다. 앞서 올 초에는 신촌블루스, 김경호, 린, 홍경민 등이 참여한 헌정 앨범 ‘비처럼 음악처럼’을 제작했다. 당시 김현식의 아들 김완제도 참여, 아버지와 사후 듀엣곡을 제작 눈길을 끌었다.

당시 김현식을 추모하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 2회분에 나뉘어져 방송되었으며, 김현식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되는 영화에는 배우 겸 가수 임창정이 주연을 맡는다.

두 가수는 오래 전에 떠났지만, 올해는 물론 향후에도 이들이 후배 가수들과 대중들에게 끼칠 영향은 분명 지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초겨울 쓸쓸한 감정을 달래는 감성으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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