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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교회

튀빙겐 학파의 바울 서신 - 고린도전서 (4)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진실한 사람들이 드러나려면 분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쟁이 생기면 진실과 거짓이 나뉘게 되지요. 그러면 그 중에 진실된 분파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찢긴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만찬의 제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빵과 잔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은 세 공관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나, 이를 기념하여 예식을 행하라는 말씀은 루가의 복음서에만 적혀 있습니다.[각주:1] 마태오의 복음서에서 피의 의의를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각주:2] 

 다음은 사랑이 가장 위대하다는 감동적인 구절이지만 읽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느낄 수 있으므로 넘어가서 다른 언어로 말하는 능력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말하나니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나 그는 성령의 힘으로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관하여는 사도행전에,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제 이 일이 널리 퍼지매 그 무리가 함께 와서 그들이 자기네 지방 말을 하는 것을 각 사람이 들으므로 어리둥절하더라.

 편지를 마저 봅시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그것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얻으려고 기도하십시오.

율법서에 "'내가 다른 언어들을 말하는 자들의 혀와 외국인의 입술을 빌려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은 끝내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언어들은 믿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능력의 표적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거든 둘이나 많아야 셋이 차례로 말해야 하고 한 사람은 그것을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해석할 사람이 없을 때에는 교회 안에서는 그런 말을 쓰지 말고 혼자서 말하거나 하나님하고만 말하십시오.

 
여기까지 하고 이제는 가장 중요한 예수의 부활에 관하여,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뒤에 다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그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 뒤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또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둥이[각주:3]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보았다는데, 사복음서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의문입니다. (P.S. 안타깝게도 나의 불찰로 발견하지 못했으나, 루가의 복음서에 언급이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짧은 끝맺음[각주:4] 뒤에 베드로의 목격 이야기가 이어졌다면 어떨까?

먼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 날이 올 터인데 그리스도
께서 모든 권세와 권능을 물리치시고 그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때입니다.
1)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실 때까지 군림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는 죽음입니다.

이리하여 모든 것이 그분에게 굴복 당할 때에는 아드님 자신도 당신에게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하나님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통치권은 죽음이 사라질 때까지 지속되고 이후에는 아버지께 넘어간다고 합니다.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면서 살고 있습니까?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나의 자랑으로 생각하며 이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내가 설혹 에페소에서 맹수와 싸우는 위험을 겪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적인 동기에서 당한 일이라면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3)내일이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 해도 그만일 것입니다.

 
맞습니다. 위 말은 그들이 부활을 믿었다는 확증입니다. 어떤 일을 목숨 걸고 한다면 그 일이 목숨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죽음을 감수했던 이유는 자신의 생명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까지도 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제 심오한 진리 하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도 없이 죽은 이들은 썩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음, 그들은 죽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썩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는지 보고 싶군요.

내가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분이 인정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든지 내 소개 편지와 여러분의 성금을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하겠습니다.
만일 나도 예루살렘에 가야 한다면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마케도니아
에 들를 일이 있으니 거기에 먼저 들렀다가 여러분에게로 가겠습니다.

 
오호, 마케도니아에서 수금을 하기 전이라면 로마서보다 저술 시기가 앞서네요. 로마 교인들에게는 고린토에서 편지를 썼는데, 고린토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어디에서 썼을까요?  

그러나 내가 오순절까지 에페소에 머물고자 함은
여기에는 나를 적대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내가 큰일을 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테오가 그리로 가거든 아무 불안 없이 여러분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할 수 있는 책은 또 사도행전이겠죠.
그는 자기 협조자 중에서 디모테오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앞서 보내고 자기는 얼마 동안 아시아에 머물렀다.

 로마서의 데리드오처럼 소스테네도 이 편지를 받아 쓴 사람인가 봅니다.

이 인사는 나 바울로가 직접 씁니다.
  1. 또한 빵을 들어 감사를 드리는 모습도 루가의 복음서에만 나오고 마르코와 마태오의 복음서에는 빵을 들어 축복하셨다고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루가의 복음서는 마르코의 복음서나 마태오의 복음서, 또는 그 출처가 된 자료를 수정·보완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본문으로]
  2. 마태오의 복음서에만 피 흘림의 목적이 기술된 것으로 보아, 최소한의 정보를 담고 있는 마르코의 복음서가 가장 원형에 가깝다고 마태오와 루가의 복음서는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작성되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의미 있는 정보를 구태여 삭제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3. 제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여덟 달 만에 태어난 아이 - 네이버 국어사전 [본문으로]
  4. 마가 복음서에는 짧은 끝맺음과 긴 끝맺음의 두 종류가 있고, 더 오래된 사본들은 짧은 끝맺음으로 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성서학자들은 마가복음서의 빈 무덤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나중에 덧붙여진 이야기라고 이해한다. [마르코 복음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