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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소룡의 웨이트 트레이닝 방법

이소룡의 근육형태는 매스와 벌크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근육기준으로 볼 때 그다지 대단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보디빌더라 불리우던 미스터 올림피아 - 숀 레이, 리 헤이니, 플랙스 윌러, 루 퍼리그노, 도리안 예이츠 등등은 자신들이 이 운동을 지속케 해준 영감의 원천이 바로 이소룡이었다고 하며, 그의 몸매를 대단히 동경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보디빌더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조 웨이더는 이소룡의 몸매를 가르켜 "The most defined body I've ever seen!" (최고의 질감 형태를 보여주는 몸매) 라고 극찬을 했었다지요.

 

왜 그리 크지도 않고, 어찌보면 빈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부르스 리의 몸매를 그렇게 구미인들이 흠모를 했던것 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부르스 리가 영화속에서 멋진 폼과 괴성으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액션을 보여 주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소룡의 몸매가 단순한 근육의 데피니션만이 아닌, 스트렝스와 파워 그리고 스피드를 위해 인간의 근육이 지닐수 있는 극한의 상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근육은 형태는 바로 '기능성'이라는 이 한단어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소룡 스페셜리스트인 존 리틀의 'The Art of Expressing the Human Body (The Bruce Lee Library)'란 책에 보면 그의 근육은 모든 근육이 '과시'를 위한 근육이 아니라 (스피드와 파워를 극대화 하여 핸드 투 핸드 컴뱃에서)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짜여진 근육 - Every muscle group on his body stood out in bold relief from its neighbor -- not simply for show (unlike many bodybuilders) but for function.' 으로 이소룡의 몸매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소룡의 근육은 2차원적인 평면으로 느낄 수 있는 단순한 모양새가 아닌, 3차원적인 시간과 공간의 움직임과 결부시켜서 감상해야하는 '살아 움직이는 예술품' 이라는 것 입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크고 거대한 구미인들이 동양의 외소한(?) 마셜 아티스트 이소룡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것 입니다.

 

한번 이소룡의 몸매와 그와 비슷한 체구를 지닌 권상우씨의 몸매를 비교해 보면 그의 근육의 질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쉽게 갈 것 입니다. 권상우씨의 근육은 매끈하고 부드럽게 보입니다. 이것은 그의 근육이 보여주기 위한 머신+프리웨이트 계통으로 적절하게 만든것이며, 이소룡의 근육은 오직 생존하기위해 다듬어진 질기고 터프한 근육이라는 것 입니다. 이 실전의 느낌을 구미인들이 동경하는것 입니다.

이소룡은 어떻게 그런 몸을 만들었는가?

그에 관해 흘러나오는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소룡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마치 선수급 보디빌더처럼) 자신이 원하는 만큼 근육의 매스 사이즈를 부풀릴 수 있는 '재능' 을 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크고 벌크스러운 것은 전투적 '실용성' 이라는 측면에서 떨어진다고 하여 항상 자신이 생각하기에 최적이라 여겼던 61kg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61kg의 신체중량을 가지고 자신에게 가장 경제적인 트레이닝 루틴을 적용하였습니다.

 

이소룡의 몸매는 위에서 말씀드렸다 시피, 멋진 모양새를 지닌 근육이 아닌, 공격과 방어라는 실용적 목표를 위해 순발력을 위해 갈고 닦은 근육의 결정체 입니다. 그것은 순수힘(스트렝스)와 스피드를 동시에 개발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최대한 조화로이 빨리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이소룡은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복합적이고 효율적인 루틴 - 스피드와 파워를 극대화 하기위한 루틴 - 을 오랜기간 (1965~70)수행했습니다. (참고로 이소룡은 72년에 사망)

 

이소룡의 必殺 웨이트 트레이닝 (화, 목, 토)

클린 & 프레스, 2세트, 8회

바벨 스쿼트, 2세트, 12회

바벨 풀 오버, 2세트, 8회

바벨 벤치 프레스, 2세트, 6회

굳 모닝, 2세트, 8회

바벨 컬, 2세트, 8회



 

이소룡이 자신의 근육의 '기능성'에 맞추어 고안한 이 루틴은 당시 모든 최신 보디빌딩 이론과, 선수 보디빌더들의 비밀 구전을 직접 전수받아 나름대로 적용해 보고 테스트 해 본 결과 만들언낸 '최적화 루틴' 입니다.

보기에는 몆세트 안되고 단순해 보입니다만, 이 운동들을 한번이라도 해보신 분들은, 이 루틴들이 최소한의 세트로 최대한의 근육 움직임을 만들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로 무술 트레이닝과 영화 촬영을 병행해야하는 이소룡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라이프 스타일에 잘 부합하는 상당히 효율적인 루틴이었음이 틀림없을 것 입니다.

 

클린 & 프레스

클린 & 프레스가 무었인지 생소하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 이것은 간단하게 데드리프트 + 오버헤드 프레스가 합쳐진 형태로, 역도의 용상에서 주저 앉는 부분을 뺀 것 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용상에서는 바벨을 가슴위까지 들면서 한번 주저 앉은 다음 일어서는데, 이소룡은 바벨을 들어 서 있는 자세로 가슴까지 올려 그래도 오버헤드 프레스 한것 입니다. 이것은 그가 따로 스쿼트를 했기 때문에 주저앉는 부분을 뺀 것이라 추측 됩니다.

 

이 운동의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가슴, 어깨, 다리, 등, 이두, 삼두, 몸통 등 모든 근육이 동시에 발달됩니다. 이 운동의 생명은 스피드와 템포에 있으므로, 각 개별적 근육의 큰 벌크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체조선수들과 같은 유연성과 파워가 조화로이 갖추어 질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소룡이 이 운동을 가장 처음 루틴으로 넣은것은, 이 운동이 전신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일 것 입니다. 모든 근신경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소룡 입장에서는, 자신의 근육이 가장 신선한 (지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신운동을 해야만 최상의 순발력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을 것 입니다.

 

사실 이 운동은 파워바디에서 엄청나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운동입니다.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쿼트보다 한수 더 높게 쳐주는 운동법입니다. 이것은 근육의 모양새를 다듬기 전에, 전신의 조화로운 근육사용능력을 (motor coordiation) 길러주어 고도의 중량을 마음 먹은대로 느낄수 있도록 '쥐어짜게' 해주며, 또한 심폐기능 향상에도 대단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클린계통의 운동은 일반 체육관에서 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을수 있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올림픽 바벨로 하기 때문에 좁은 체육관에서는 자리를 아주 많이 차지하며, 중량이 점점 증가함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일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바벨을 지면에 세게 내려 놓기가 쉬우므로, 이런 동작이 큰 운동들은 요즘 신새대(?) 관장님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스쿼트

여러 기록들을 보면 이소룡이 가장 극찬했던 운동은 바로 스쿼트 입니다. 이소룡이 생전에 남긴 무술 트레이닝 자료들에 가장 많이 언급이 된 운동이 바로 스쿼트라 하지요. 그는 스쿼트를 무척이나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해보고 소화 했다고 합니다.

 

이소룡은 하체의 파워없는 상체의 스피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것을 잘 아는 무술인 이엇습니다. 그는 스탠드보다 풀 스쿼트를 선호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가 정석적인 스쿼트를 통해서도 충분히 근력과 순발력 모두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가 얼마만큼의 중량으로 이 운동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클린&프레스의 전신근육 풀어주기후, 이 스쿼트를 꽤 무겁게 하여 하체를 강화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만일 그러했다면 이소룡은 다리의 힘 뿐만 아니라 무거운 스쿼트에서 얻어지는 몸통의 힘 (허리)도 무척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하게되는 굳모닝에도 연결됩니다.

 

 

풀오버

주로 광배근 발달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이 운동은 상체의 순발력을 위해 벤치프레스보다 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는 운동입니다. 무술수련에 있어, 튕겨주고, 밀고 당기고 내려 찍고 들어 올리는 상체 파워의 뿌리는 바로 광배근에서 나온다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아는 이소룡은 광배근 트레이닝을 위해 풀오버를 가장 신경 썻던 것임이 틀림 없습니다. 그의 전체적인 체구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한 그의 광배근을 보면 그것이 절대 그냥 나온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풀오버는 광배근만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이두와 삼두, 어깨 삼면, 그리고 가슴과 복부까지 무척 많은 상체근육을 써야지만 완전히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운동입니다. 어찌 보면 상체의 순발력만을 놓고 본다면 풀오버가 벤치 프레스보다 더 많은 장점을 가진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풀오버는 벤치프레스와 달리 관절을 회전시키는 동작이 있기 때문에, 벤치프레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량제한이 따르게 됩니다.

 

추측컨데, 아마도 이소룡은 풀오버를 스쿼트와 슈퍼세트로 조합하여 사용했던것 같습니다. 이소룡이 풀오버를 스쿼트와 슈퍼세트로 같이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스쿼트와 풀오버의 슈퍼세트조합은 1960~70년대 일종의 공식처럼 아주 흔하게 행하여 지던 것 이었습니다. 이소룡의 실전 웨이트 트레이닝의 지식은 주로 당시의 보디빌딩 잡지와 주변의 선수급 친구들에게서 얻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소룡도 당연히 그렇게 했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또한 자신을 극한의 상태로 몰아가기를 좋아하는 이소룡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도, 스쿼트와 풀오버의 초고강도의 슈퍼세트 조합이야말로 그에게 상당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트레이닝법이라는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것 입니다.

 

결국 이것이 무술수련에 있어서도 상체와 하체의 움직임을 조화로이 통일 시킬수 있는 순발력을 위해 가장 힘들고 효과적인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혹자는 스쿼트 + 벤치프레스가 가장 막강하지 않겠는냐 하겠지만, 이소룡의 입장에 있어서 벤치프레스는 그 단순한 메카니즘으로 (오직 푸시)로 인해 풀오버보다 활용도가 떨어졌을 것 입니다.

 

 

벤치 프레스

이소룡의 가슴근육 세퍼레이션을 보면, 그가 벤치프레스에도 대단한 일가견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슴 외곽과 내부의 근육형태를 보면 그가 충분히 벤치프레스를 통해 가슴근육을 단련해 왔을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광배근에 비해 가슴근육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는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이소룡이 벤치프레스를 '가슴 사이즈'를 위한 운동이 아닌, 그 푸싱 메카니즘상 펀칭 파워의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 입니다.

 

광배근의 경우 그 위치로 인해 방어시 상체를 버티게 해주고 상대를 밀어 부칠 수 있게 해주는 지지목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벤치프레스에서 단련되는 가슴과 어깨는 그 연결성으로 인해 스피드를 중시한 펀치시 유용히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이소룡이 풀오버를 전통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법대로 대체적으로 무겁고 강하게 트레이닝 했음을 알 수 있으며, 벤치프레스는 상체의 유연성과 스피디한 펀칭능력을 위해 적은 무게로 최대한 빨리 진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체적으로 이소룡은 벤치프레스 만큼은 특별한 변형을 하지 않고 스탠다드 식으로 했다고 합니다.

 

 

 

굳모닝

이소룡이 왜 1970년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그만 두었는지에 관한 정확한 근거자료는 없지만, 아마도 틀림없이 굳모닝 트레이닝 때문일것 입니다.

 

이소룡은 전통적인 방식대로 굳모닝을 허리 강화 때문에 하였습니다. 그런데 1970년 어느날 이소룡은 자신의 몸무게와 똑같은 61kg을 (큰 원판 2개와 작은 원판 2개) 바벨 양쪽에 적재하고 특별한 워밍업 없이 늘 하던대로 상체가 지면과 평행이 되도록 굳모닝을 하였습니다. 그가 마지막 8회를 끝마쳤을 때, 이소룡은 척추에서 '뚝' 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것은 그의 척추의 천골 4번째 부위신경을 크게 상처를 준것 이었습니다.

 

이후로 이소룡은 허리에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통증을 느끼며 살아가야 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 린다의 말에 의해도 옆에서 지켜보기 차마 혹독할 정도의 고통이었다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소룡이 72년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원인중 하나가 바로 이 척추손상으로 인한 과다 약물투여가 아닌가 합니다.)

 

이소룡의 허리 부상원인은 어느날 우연히 덜컥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랜기간에 걸쳐 조금씩 미세한 부상이 겹쳐오다가 발생한 예견된 사고 였던것 같습니다. 이미 자신의 몸컨디션에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를 하고 있었으며, 스스로도 트레이닝의 달인이었던 이소룡은, 단순히 워밍업을 안했다는 이유로 허리를 다쳤을 리는 없었을것 입니다. 자신의 몸에 철저하고자 했던 그의 무한한 정신력이,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육신을 짓눌러 버린것 이겠지요.

 

후에 이소룡은 크게 자신의 굳모닝 트레이닝을 후회하며, 가까운 지인에게 오직 빈 바만을 가지고 굳모닝 할것을 권유했다 합니다. 굳모닝은 단순히 구부렸다 펴는 유연성 운동이지 힘을 기르는 운동이 아니라는 경험을 설파하면서 말이지요.

 

만일 이소룡이 처음부터 꾸준히 데드리프트를 해왔다면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고 반문을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소룡은 나름대로 데드리프트가 자신의 무술 트레이닝 철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 입니다. 역동적이고, 큰 몸통의 움직임을 좋아했던 이소룡의 성격을 볼 때, 직선적으로 힘만 주고 버티는 데드리프트보다, 좀더 복잡한 운동반경을 지닌 풀오버 + 굳모닝을 선택한 것이 아마도 당연한 이치였을 것 입니다.

 

 

바벨 컬

이소룡이 가장 좋아 했던 운동이 바로 바벨 컬이라 합니다. 찌르기나 펀치의 빠른 타격회수를 위해서 필수적인 이 운동은, 그의 실전 무술 철학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운동이 아닌가 합니다.

 

이소룡의 이두근육이 위 아래 안쪽 바깥쪽 할것 없이 고른 밀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볼때, 그는 이운동에 있어서 여러가지 변형을 가져가며 트레이닝 했을것 이라고 짐작됩니다. 예를 들자면 다리 스탠스, 좌우 손의 넓이, 어깨를 내미는 정도, 혹은 그립 등등 말 입니다.

 

 

그 외의 트레이닝

근력기초를 쌓기위한 웨이트 트레이닝은 아니지만, 이소룡이 흔히 실행하던 실전 무술 훈련중 하나가 바로 덤벨 쉐도우 복싱이었습니다. 이소룡은 펀칭 연습시 12세트, 각 100회의 펀칭을 (한손당 100회) 덤벨을 쥐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덤벨의 무게는

1세트 : 0.5kg

2세트 : 1kg,

3세트 : 1.5kg,

4세트 : 2.5kg,

5세트 : 3.5kg,

6세트 : 5kg,

7세트 : 5kg,

8세트 : 3.5kg,

9세트 : 2.5kg,

10세트 : 1.5kg,

11세트 : 1kg,

12세트 : 0.5

이후는 빈손으로 펀칭

이었다 합니다. 각각 100회라면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엄청난 펌핑에서 오는 버닝을 생각해 보고, 또 이것이 웨이트 트레이닝에 맞물려 돌아갔다는것을 보면 정말 그가 몸관리를 얼마나 철저히 해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것 입니다. (이소룡이 AB형 이었는가?)

 

또한 이소룡은 복부근육에 있어 지나치리라 만큼 광적인 집착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는데, 아내 린다가 전하길, 이소룡은 집에서도 틈만 있으면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혹은 TV를 보면서 끊임없이

싯업

크런치

레그 레이즈

V-업

로만체어 활용

을 했다고 합니다.

 

 

 

잊혀질 수 없는 대인

전체적으로 이소룡은 무술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일발 타격 능력과 끊임 없이 움직여야 하는 지근, 속근 훈련을 잘 조화로이 이룬 무술가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이야 무술훈련의 개념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속근 위주 훈련의 단련법에서, 서양 문물을 잘 받아들여, 그것을 현명하게 조화시킨 이소룡의 선경지명이야 말로, 또 그것을 크게 대중화한 공로야 말로, 그 어떤 무술가보다도 크게 칭찬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합니다.

 

회상하건데, 그것이 '왜 아직도 이소룡을 추모하는 기념비적 다큐멘타리가 잊을만 하면 나오는 것인가' 이겠지요. 이소룡의 그 역동적인 움직임과 괴성은 당시의 모든 젊은 사나이들의 가슴을 불타게한 대로망 이었습니다. 또한 이소룡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고난과 역경에서 다시 타오른 열망'의 기운을 우리 모두가 접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소룡이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단순하 트레이닝 법이 아닐것 입니다. 무술의 대인답게 겸손함과 자기극복 그리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자아발견을 그는 그 후대의 사람들을 통해 완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