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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Knowing

 수작이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명작은 못 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적진 않겠다.
 이 영화 전체의 메시지는 마지막 대사에 집약되어 있다. 제목과도 관계되는 "앎" 의 문제이다. 그럼 대체 무엇을 안다는 것인가. 제작자는 감상자가 무엇을 알기를 원하는가. 사실 알기를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중심생각임은 자명하다.
 무엇인지는 마지막 바로 전 대사를 들으면 알 수 있다. 끝이 아님을 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무엇이 끝이 아닐까? 영화 내에서 대사의 의미는 죽음이 끝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즉, 사후 세계가 존재함을 아는 것을 뜻하는데, 이 때는 단순히 그것의 존재 뿐 아니라 다른 것들에까지 생각이 확장되어 한꺼번에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주인공 아버지의 직업을 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이 몇 시간 전 아들에게 앎에 대해 말한 적이 있으니 그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간단하다.
 또 다른 관점에서, 엄청난 재앙이 닥치겠지만 그것이 아직 지구 종말은 아니라는 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자의적일 수 있지만). "그런 일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가 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 그때가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을 아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아멘.
 
...
이렇게 평을 써놓고 검색을 했더니 내가 생각했던 문제와 모르던 요소들까지 언급한 리뷰가 있어서
검은돌이 뭔지 궁금하죠?

메타비평을 해보자면,
항공기 추락씬의 롱테이크는 단순히 지루함을 날려버리는 컷이 아니라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인 지옥을 표현한 것이었다.

또 예루살렘을 두고 이슬람과 혈전을 거듭하는 쪽은 크리스찬이 아니라 유대인이다. 그것도 집안 싸움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슬람의 주장을 찾아 읽어보지 못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영화 해석은 잘 되었으나 결론 부분인 글쓴이의 의견이 잘못된 것 같다. 수퍼플레어는 외계인신의 의도도 아니며 단순히 자연의 주기도 아니다. '계시자인 소녀' 는 에스겔서의 삽화를 보았고 머리맡에는 Holy Bible이 있었다.

'외계인에 믿음을 가지라'가 아니고 서번트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이아나 웨이랜드는 정해진 대로 죽었지만 전달자들은 딸인 애비에게 그가 안전하다고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존은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었고 끝이 아니라는 아버지의 말에 안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글쓴이의 생각처럼 구원이 의지와 관계없이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전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다이아나 웨이랜드는 안전하다고 알려졌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그 부분은 알기 어려워서 공백으로 남겨두었을지도 모른다.
 
글쓴이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더 많이 알아봐야 별거 없다는 거' 라고 했는데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영화 제목인 '앎' 이 '지식' 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됐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존이 예언의 내용을 알고 재앙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려 했으나 '앎' 에도 불구하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는 내용에서 느낄 수 있었다. 태양 복사열에서 안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곳의 좌표를 '앎' 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지 못한 존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곳에 온 덕분인지 나중에 아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는데 이 '앎' 에 관해서도 그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그 자체로 소중한 '앎' 이었다.


또 다른 리뷰도 소개하면,
<노잉>을 제대로 해석하다! (스포일러 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