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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알아야 대응한다 -우리 강역 변천사-

더 연구하고 검토되어야 할 내용

  (1) 한인시대의 나라 한국桓國이 3300ㄴ녀간에 7명의 천제天帝가 통치했다는 내용과 한국의 강역에 대한 추가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2) 한국이 존재한 BC. 7000년 이전에 지구의 상태 특히 동북아시아의 산, 바다, 평야, 인간의 생활 등은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3) 환웅시대의 국호를 구리九黎라 했는데 우리 민족의 명칭을 '구리민족' 으로 하고 구리의 후예는 모두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 하면 어떨 것인가. 즉 동북아시아는 모두 같은 민족이고 형제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4) 현재까지 확보된 자료를 지초로 고조선의 역사를 정리해야한다. 정리할 기관과 방법을 개발하고 개인이나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모든 자료를 총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업은 중국의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이나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발표 이전에 완성하여 국내외에 홍보해야 한다.

  (5) 고조선의 수도와 강역에 대한 다음 사항은 명확히 정리되어야 한다.
 ① BC. 221년에 연燕 나라의 침공과 고조선의 수도를 만주에서 평양으로 이동했다는 설은 시대(기자국箕子國 말)나 위치상으로 전혀 맞지 않은 가설임으로 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를 철회해야 한다.
 ② 위만의 '왕검성王儉城 점거 설' 은 위만국을 과장하기 위한 역사 왜곡임으로 이를 삭제해야 한다.
 ③ 고조선 때 한반도 남부를 진辰이라 하여 '제부족 연맹사회' 라는 설은 분명한 역사 왜곡임으로 이를 삭제해야 한다.

  (6) 열국 시대의 여러 나라에 대한 사서 정립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은 30~40년의 나라도 모두 정사화正史化하여 25사에 정리되어 있는데 200년 이상 존속한 열국시대의 여러 나라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하여 많은 자료가 요구된다.

  (7) 본 연구에 훨씬 앞서 신채호 선생이 백제와 신라가 중국의 동부 지역을 경략經略했다는 「조선상고사」의 기록에 대하여 백제와 신라의 수도는 한반도에 있고 중국 땅으로 세력이 확장된 것으로만 이해한 것 같다. 그렇다면 신라와 백제의 전쟁이 어디에서 일어났겠는가? 백제의 부흥군復興軍이 백제의 200성을 모두 회복했을 때 당나라 군사 40만 명이 투입되어 이를 격퇴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한반도의 남부인가 아니면 중국 땅인가 하는 의문도 없이 역사를 연구한 사학자들의 무책임한 자세를 한탄한다. 이는 더 연구되어야 한다.

  (8) 수나라에서 만들었다는 운하의 실존 여부를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추가적인 자료가 요구된다.

  (9) 후삼국에 대한 자료는 모두 우리 사서에 의존했기 때문에 폭 넓은 연구가 될 수 없었다. 만약 여기에 대한 다른 기록이나 자료가 있다면 더 연구할 수 있도록 제공해주기 바란다.

  (10) 고려의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주로 「고려사」「원사」「신원사」를 참고하였다. 만약 위 사서의 내용에 문제가 없다면 앞의 고려 강역을 인정해야 하고 문제가 있거나 해석의 착오라면 이를 고쳐주고 더 연구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11) 근세조선의 강역에 대해서는 본 연구회에 소장하고 있는 지도만을 제시하였다. 최근 중국은 만주 지역의 중국 역사화와 함께 백두산까지도 중국 영토로 인식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을 하고 있다. 이는 간도 지역의 확실한 영토화와 조선족에 대한 강한 통제력을 세우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근세조선의 강역에 대하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