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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교회

튀빙겐 학파의 바울 서신 - 로마서 (3)

그리고 나는 남이 닦아놓은 터전에는 집을 짓지 않으려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만 복음을 전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흥미롭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 문명의 접촉이 없는 고립된 부족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겠죠.
 그런데 갈라디아서에서 언급한 바,
다만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뒤흔들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미 전한 복음과 다른 것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위처럼 변질된 복음을 먼저 받아들인 곳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터전은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음 장에는 이 편지가 기록된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말이 나옵니다.

이러한 까닭에 여러분을 찾아가려던 나의 계획이 번번이 좌절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서 할 일을 다 끝냈고 또 이 여러 해 동안 너희에게 가고자 하는 큰 소원이 내게 있어서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여러분을 만나 잠시나마 함께 지내면서 즐거움을 나누다가 여러분의 후원을 얻어 그 곳으로 가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루살렘에 사는 성도들에게 구제금을 전하러 갑니다. 그것은 마케도니아아카이아의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기부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바울로마케도니아아카이아 지방을 거쳐 예루살렘에 돌아가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내가 거기에 갔다가 로마에도 가봐야겠다." 하고 혼잣말을 하였다.
 

 
흠정역에는 위 계획이 영 안에서 작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아카이아 지방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쪽에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계속 보죠.
그 소동이 가라앉은 뒤에
바울로는 신도들을 불러 격려한 다음, 작별 인사를 하고 그 곳을 떠나 마케도니아로 갔다. 바울로는 지나는 길에 그 지방의 교우들을 만나 여러 가지로 격려하고 그리스로 갔다. 

 
편지를 썼을 때는 이미 아카이아 성도들의 구제금을 받았으니까 그리스로 간 이후에 썼겠죠.

우리가 예루살렘에 이르매 형제들이 우리를 반갑게 받아들이니라.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전에 편지를 썼으므로 사도행전에서 위 두 구절의 사이의 시기에 로마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을 것입니다. 위 방문은 사도행전에 근거했을 때, 사울이 바울이 된 후 세번째이자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입니다. 다시 로마서를 보면,

이 편지를 받아 쓰는 나 데르디오도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문안 드립니다. 이 도시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교우 과르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확실한 단서가 나왔습니다. 데르디오에 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에라스도는 재무관이라고 합니다. 어느 도시일까요?

에라스도는 고린토에 머물러 있고 트로피모는 병들었기 때문에 밀레도스에 두고 왔습니다. 

 
위 구절은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 있습니다. 또 다른 단서를 네이버 블로그에서 찾았습니다.
고대의 고린도는 에게 해로 진출하는 겐그레아 항구와 서편으로 아드리아 해로 나가는 레기움 두 항구를 거느렸다. … 거기에서 도로를 따라 후문으로 나와 길 건너 아래로 내려가면 아고라(시장)에서 야외극장을 잇는 돌로 포장된 길이 나오고, 그 길 끝 바닥에는 라틴어로 에라스도(Erastus)가 사비를 들여 이 길을 돌로 포장했다는 글이 새겨진 돌조각을 발견하게 된다.  

겐크레아 교회에서 봉사하는 우리의 자매 페베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함께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성도의 예절을 갖추어 그를 영접하십시오.


 고린토는 아카이아 지방에 속했던 도시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편지의 시기를 다시 압축하고자 사도행전을 참고하면,
거기에서 석 달을 머물다가 배를 타고 시리아로 건너가려고 하였으나 자기를 해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를 알아채고 다시 마케도니아를 거쳐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하였다.

 
위에서 언급된 석 달 안에 로마서를 작성했을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 외에 흥미로운 점은 바울의 협조자인 에라스도가 재무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따르면 재무관은 로마의 공직으로 매년 민회에서 선출했고, 이 관직이 끝나면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고 합니다. 이 재무관과 안찰관을 거쳐야 법무관, 집정관이 될 수 있고 집정관이 임기를 마치면 대행집정관이 된다. 유대아 지방의 총독을 지낸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바로 이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