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대신 '크리스토'라는 원어식 발음을 사용하자 |
나는 평소 '그리스도'란 번역이름을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크리스토'여야 할 발음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라틴 식으로 기재한다면, 'Grisdo'정도가 된다. 일본의 '기리스도'와 매우 비슷하다. 우리네가 '크리스토'란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스도'로 받았을까? 일본인들은 성탄절도 '구리스마수'로 발음한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크리스마스'라고 바로 발음한다. 외국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그리스도"라고 부르면 그들 귀에는 마치 한국인들의 일부만 빼놓고는 '크'나 'K'사운드 등 거센소리 발음을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어눌한 사람들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초기 외국인 선교사들과 그들을 돕는 한국인들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맨 먼저 잘못 쓴 이름인지, '예수 크리스토'의 한자어가 '야소기독'이어서 그런지, 우리 당대에 그렇게 하기가 쉬워서 그런지, 아니면 외래어를 우리 식으로 고쳐 불러야 더 손쉽고 친근하게 들려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처음에 그렇게 그릇 부르기 시작한 탓에 다들 덩달아 부르게 됐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세월이 가면서 좀더 일찍 충분히 고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래 잘못된 이름을 끼고 살아왔다. 게으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일 처음부터 '크리스토'라고 불렀으면 지금도 '크리스토'였을 것이고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글사전에서조차 '그리스도'로 기재하고 있다. 결국 한글사전조차 습관화된 한글개역성경의 발음을 손들어주고 만 것이다. 반면 소설의 주인공 '장 크리스토 백작'은 크리스토라고 제대로 불린다. 성탄절을 '그리스마스'(Grismas!)로 부르는 사람도 하나도 없다. 크리스토는 어색하고 크리스마스는 어색하지 않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사실 크리스토도 정확한 발음은 아니다. 그리스어 'Xristos'의 첫 발음은 '크'와 '흐'의 합성발음에 가깝다. 그래서 라틴계 사람들이 최대한 가깝게 부른다는 것이 이 발음이었던 것이다. 또 기독교가 로마당대에 널리 보급되면서 많은 히브리 발음들이 그리스어 식으로, 그리스 발음이 라틴 식으로 고쳐진 것도 사실이다. 습관이란 게 무섭다. 한글개역성경의 그 많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이름들도 죄다 '우리 식'(?)으로 뜯어고쳐 부르기 쉽게 하다보니 딴 후속번역들도 비슷이 전철을 밟아간다. 마치 찬송가 가사번역이 맨 먼저 이뤄질 당시 '첫 단추'를 잘못 끼었어도 교인들에게 습관이 돼버린 탓에 찬송가 개편 때마다 쉽게 고치지 못하는 거나 다름없는 현상이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복음전파를 위해 외래발음을 되도록 우리 귀에 거슬리지 않게 하느라고 그랬을 게다. 아니면 당시에도 한자를 한글보다 더 흔히 썼기 때문에 우리 식 한자발음에 되도록 맞추느라고 그랬을지도 모른다. 조선말기아니 그 뒤로도 한글을 '언문'식으로 한자보다 낮춰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래어 발음이 극히 제한된 일본치하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말글로 외래어발음을 제대로 낼 수 없다는 생각은 정말 잘못된 발상이다. 외래어에 자주 나타나는 거센소리 [ㅊ, ㅋ, ㅌ, ㅍ]가 모두 우리 한글에 이미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네가 거센소리 발음을 못하는 민족도 아닌데 구태여 이런 식으로 기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취지에도 어긋날뿐더러 한글의 진가를 격하시킨 소치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더욱이 우리는 일부 외국인들이 거의 발음하지 못하는 된소리까지도 쓰고 소리낼 수 있으며, 현재는 사라진 고대한글의 네 가지 글자소리를 추가하면 세계언어의 어떤 웬만한 발음도 쓰고 소리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외국어발음을 비교적 빨리 쉽게 배울 수 있는 이유도 우리민족 말글의 우수성 때문이리라. 예를 들어 우리는 McDonald를 미국식으로 '맥다널드'라고 쉽사리 발음하고 쓸 수 있지만 일본인들은 어디까지나 '마구도나루도'이다. 물론 발음 가지고 일본인들을 열등하다고 깔보려는 뜻은 아니다. 초기성경을 번역한 이들이 한글로 될지 안 될지 발음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된소리를 부드럽고 부르기 쉽게 고쳐버린 셈이다. 이유야 어떻든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낀 것이다. 귀에 익은 성경 이름 몇 가지의 잘못된 발음 예를 들자(원어이름 끝 부분 표기는 학자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파울/바울, 페트로/베드로, 야코보/야고보, 코린토/고린도, 티모테우스/디모데, 콜로사이/골로새, 필리포이/빌립보, 에페소/에베소, 마르코스/마가, 루카스/누가, 에스테르/에스더, 예헤즈켈/에스겔, 미카/미가, 하바쿡/하박국, 제카레야/스가랴, 제파니아/스바냐... 물론 이런 발음들이 사뭇 거칠고 이국적이지만, 이국어이니까 이국적인 것은 당연한 것이며, 단지 발음을 하러 노력하고 안 하고의 차이인데, 우리가 충분히 발음할 수 있는 세계적인 언어를 갖고있으면서도 마치 어눌한 민족인 양 성경을 이런 식으로 번역해버린 데 늦게나마 유감을 표한다. 공동번역성경 특히 가경 같은 데는 그런 대로 카톨릭의 영향을 받아 상당량 원 발음을 시도한 것을 본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나라 카톨릭도 그렇지, '가톨릭'을 고집할 것은 또 뭔가! 이해가 안 간다. 이것은 '하느님' '하나님'과의 차이와는 또 다르다. 지금이라도 원어식 발음에 가깝게 고쳐 쓸 수는 없나? 너무 늦었는가? 우리는 남이 내 이름 '김삼'을 '김샘' 식으로 잘못 발음하면 금방 김이라도 새듯 기분 나빠하면서도, 우리 주님의 이름을 이렇게 적당히 아무렇게나 불러도 되는 건가? 물론 자애로우신 주님은 우리의 엉성한 발음을 널리 용납하시겠지만 말이다. 단 잘못된 성경외국어 발음은 구원과는 상관없다. "예수 크리스토는 우리 주님!" |
기사입력: 2003/07/28 [03:41] 최종편집: ⓒ 뉴스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