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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경제

아이폰 숨기는 삼성 직원... "위기를 누가 초래했나"

[분석] '왕의 귀환', 삼성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건희 회장
ⓒ 권우성
이건희 복귀

다시 삼성이다. 이건희가 돌아왔다. 일부에선 '왕의 귀환'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위기'를 들고 왔다. '이번이 진짜 위기'라고 했다. '명예회장'도 아니다. 삼성전자 회장이다. 삼성에선 사실상 그룹을 대표한다고 했다.

 

도대체 삼성 안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회장 복귀를 둘러싸고 법적 타당성 뿐 아니라 도덕적 논란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돌아왔다. 무엇일까.

 

삼성그룹 전자부문 계열사에 다니는 이아무개(38)씨. 그는 최근 휴대폰을 하나 더 구입했다. 스마트폰인 아이폰이다. 한 달여 망설이다가 샀다. 이씨는 "솔직히 회사에서는 제대로 꺼내놓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차장 4년차인 그 역시 상사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 동료들 가운데 상당수가 투폰족(스마트폰 등 2개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자부문의 어떤 사무실에서 한 직원이 아이폰을 쓰다가 임원에게 걸려 크게 혼이 났다고 들었다"면서 "직원들 사이에선 사내 보안보다 '아이폰 숨기기'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씨의 동료인 김아무개(37)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휴대폰 사업 쪽의 친구에게 '왜 우리는 아이폰 같은 것을 못 만드냐'고 물은 적이 있다"면서 "자신도 답답하다고 하더라. 당장 매출이 중요하니까 그냥 가격 내리고, 겉만 좀 바꿔서 다시 시장에 내놓고…"라고 전했다.

 

'아이폰'은 숨기고, '옴니아'는 내놓고 다니는 삼성 직원들

 

지난 25일 오후에 만난 이들은 이건희 회장의 복귀에 대해서도 "차라리 잘됐다"는 반응이었다. 이 회장의 '삼성 위기론'에 대해, 이씨는 "입사한 지 10년째이지만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오너가 들어오면, 윗사람들이 좀 더 책임 있게 일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웃으면서, "이 회장이 그동안 그만뒀다고 했지만 내부에서 그걸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며 "이제 공식적으로 돌아왔으니, 아마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과 동기라는 임아무개(39)씨는 삼성 금융계열사에서 일한다. 그 역시 휴대폰이 두 개였다. 삼성 옴니아와 아이폰. 임씨는 "옴니아가 처음에 나왔을 때 12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공짜폰이더라"면서 "아이폰 값은 작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라고 말했다. 임씨도 회사 안에선 아이폰을 내놓지 못한다고 했다.

 

임씨는 "위기라고 하는데, 위쪽에서 생각하는 것과 우리처럼 아래에서 생각하는 느낌하고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면서 "일부이긴 하지만, 삼성의 위기는 윗사람들이 만들어놓고 아랫사람들은 뒷수습만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이어받았다. 그는 "전자 쪽 동료와 어제(24일) 우연히 통화를 했는데, 반도체 공장때문에 난리가 난 모양이더라"면서 "회장이 복귀 선언하는 날 공장에서 또 사고(정전)가 터졌으니, 아마 나중에 몇몇은 날아갈 것이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그는 "전자 쪽이 위기이긴 위기인 모양"이라며 "반도체도 그렇고, 휴대폰 쪽도 그렇고, 가전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전자 쪽) 아래 직원들은 주말도 반납하고 일만 죽어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체로 그동안 삼성에서 '창조와 혁신'을 주창해왔다고 하지만, 실제 내부의 의사소통은 패쇄적이고 여러 인맥을 통한 줄 세우기나 비판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조직 문화 등이 여전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폰
ⓒ 애플
아이폰

"윗사람들이 위기 만들어놓고, 아랫사람들은 뒷수습만"

 

물론 삼성의 부장 이상 간부나 고위급 임원들의 인식은 이들과 온도차가 있다. 삼성의 한 임원은 "지금은 회사 안팎의 경영 환경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면서 "한때 삼성식 경영의 모델이었던 토요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찌됐든 오너 일가의 법적인 문제는 마무리됐고, (삼성)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경영진들이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지배구조 자체에 대해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또 다른 삼성 고위 인사는 "지금은 과거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현재보다는 미래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고, 이를 대비하고 실천하기 위해선 강력한 오너의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방점은 '미래'에 찍혀 있었다. 이 회장이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미래를 위해선 현재에 대한 우리의 냉철한 평가가 선행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의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실적만 보면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다. 작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폭풍우 속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고, 올해 1분기도 4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역시 사상 최대다.

 

하지만 좀 더 내용을 들춰보면, 녹록치 않다. 반도체부문에선 최근 몇 년 새 외국 업체들의 파산에도, 예상보다 수익이 나지 않고 있다. 일본업체들의 맹추격과 함께, 국내업체인 하이닉스와 기술력 차이도 거의 사라졌다.

 

휴대폰 쪽은 노키아에 이어 세계 2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에선 힘을 못 쓰고 있다. 특히 애플과 구글 등이 주도하는 스마트폰 시장에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삼성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 아들 이재용 부사장.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건희

삼성에서 고위 임원을 지냈던 한 인사는 "애플이나 구글은 소프트웨어나 디자인만으로 전 세계 전자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삼성 CEO들은 스스로 창조와 혁신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여전히 제조업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삼성 특검 등을 핑계로 대면서 2년여 동안 제대로 시장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면서 "그래서 결국 이 회장을 다시 모시자고 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또 삼성 위기론의 이면에는 이씨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에 대한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회장 퇴진의 장본인격인 김용철 변호사는 25일 한 강연회에서 "삼성의 (경영) 위기라기보다는 이씨 일가 오너의 위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부사장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이 회장이 '저 경험도 없고 덜떨어진 X은 이런 곤경을 당하면 못 이겨낸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내가 확실하게 (경영권을) 다져놓고, 최대한 만들어 놓고 가자'고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