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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화

“엄마가 좋아하는 영어책, 애들은 싫어해요”

어린이 영어학습만화 낸 외화번역가 이미도씨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반지의 제왕’ ‘제리 맥과이어’ ‘슈렉’ ‘쿵푸 팬더’‘인어공주’ ‘몬스터 주식회사’ 등을 번역한 외화번역가 이미도(49)씨를 만났다. 어린이 영어학습만화 시리즈 『이미도의 아이스크림 천재영문법』(파우스트)을 펴낸 게 계기가 됐다. 지난해 11월 첫 권을 냈고, 최근 2권이 나왔다. 

『… 천재영문법』은 거대 프로젝트다. “총 30권으로 2013년 완간될 계획”인 데다 “이후 애니메이션ㆍ게임ㆍ공연문화상품 등 ‘원소스 멀티유즈’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양적ㆍ질적으로 큰 포부다. 이미 ‘외화 번역계의 1인자’로 자리잡은 그가 새로운 영역에 야심 찬 첫발을 내민 셈이니 그의 말대로 “스릴 있는 도전”일 터다. 

그는 학습만화 시리즈를 만들게 된 동기에 대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몬스터’가 아닌 ‘토이’로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재미있게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 역할을 만화가 해주리라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가 자막을 달아 넣었던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이번 만화책의 스승 역할을 했다. “재미 속에서 상상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콘텐트”의 모범을 그가 번역한 애니메이션에서 찾는 것이다. 

『… 천재영문법』의 주인공은 백설공주를 패러디한 ‘백살공주’ 할머니와 일곱 난쟁이를 변형한 ‘일곱 아이돌(idol)’이다. 이들은 영어를 무기로 영어 울렁증을 가진 ‘칠렐레팔레레 마녀’와 맞선다. 장면장면 영화 ‘타이타닉’ ‘해리포터’ ‘슈렉’ 등을 패러디한 대사도 집어넣었다. 책 제목에 ‘영문법’이 들어있긴 하지만 실제 학습 콘텐트는 그리 많지 않다. 간혹 이에 불만을 표시하는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그는 “그때마다 ‘저, 이 책 어머니를 위한 책 아니거든요’라고 대답한다”고 했다. 영어를 많이 넣으면 구매자인 부모는 솔깃하겠지만, 아이들은 안 본다는 것이다. 

그는 미군 통역관 출신인 아버지에게서 영어를 배웠다. 중학생 때부터 하루에 단어 하나와 그 단어가 들어간 영어 예문 하나를 암기했다. 또 안데르센 동화ㆍ그림 동화 등의 영어원서를 구해 읽었다. 이야기 재미에 빠져 읽다 보니 저절로 영어공부가 됐다. 
그는 “아이들에게 하루 50∼100개씩 단어를 외우게 하고, 문장을 잘게 쪼개 문법적으로 분석하도록 가르치는 현 영어교육법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렇게 10년을 공부해 봐야 영어로 문장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 천재영문법』에서는 미국식 통합형 영문법을 뼈대로 삼았다. 문장의 주어가 되는 명사에 대한 개념을 가르쳐 주는 게 첫 단계다. 그 뒤 동사를 가르치고, 명사와 동사를 합쳐 문장을 만드는 방법을 깨우치게 한다. 그리고 형용사ㆍ부사ㆍ접속사를 가르쳐 긴 문장을 쓰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바로 그가 말하는 ‘천재영문법’이다. 

그는 요즘 부산 해운대 부근 작업실에서 주로 일을 한다. 서울의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올라온다. 방해받는 일 없이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2년 전 지방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는 “술 먹자, 놀자 하는 유혹이 없어 일하는 시간이 두 배는 늘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유배’시켜 가며 그가 몰두하는 일은 주로 창작활동이다. 책을 쓰고, 신문연재칼럼을 준비하고, 또 만화책 스토리를 구상한다. 본업인 외화번역 편수는 많이 줄였다. 1993년 외화 번역을 시작한 이래 그가 자막을 단 영화는 꼭 465편이다. 연평균 27편이 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하지만 이젠 두 달에 한 편꼴로만 번역을 한다. 

“창작이야말로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새로운 분야에 계속 도전하면서, 창의적인 상상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Good’이 ‘Great’의 가장 큰 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현재의 명성과 성과에 안주할 수 없다는 각오가 단단히 묻어났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 최정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