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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교회

튀빙겐 학파의 바울 서신 - 고린도후서 (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로와 형제 디모테오고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와 온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에서 보편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우리' 를 제외한 '우리' 는 바울과 디모테오임을 알 수 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고난에 대하여 알리려고 합니다. 그 고난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견디어낼 수 없으리만큼 심해서 마침내 우리는 살 희망조차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신뢰하면 안된다는군요.

1)율법은 석판에 새겨진 문자로서 결국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의 직무에도 영광이 있어서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에 비록 잠시 동안이기는 하였지만 그 얼굴에는 너무나 찬란한 광채가 빛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감히 그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물며 영의 직무에는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오, 저들이 모세보다 더 영광스럽습니까?

우리는 모세처럼 2)자기 얼굴에서 광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베일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하지 않습니다. 

 사라지는 것을 보이지 않으려고 가렸던 것입니까?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 얼굴의 피부가 빛나는 것을 보았으므로 모세가 그분과 대화하러 들어갈 때까지 다시 베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오히려 빛나면 사람들이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 하므로 가려준 것이 아닙니까? 자세한 사정이야 어떻게 알고 감히 말할 수 있겠냐만은……. 

만일 우리가 들어 있는 땅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우리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들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건물입니다.
지금 육신의 장막을 쓰고 사는 우리는 옷을 입듯이 하늘에 있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장막을 벗어버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늘의 집을 덧입음으로써 죽음이 생명에게 삼켜져 없어지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
의 심판대 앞에 나가는 날에는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앞의 편지[각주:1]에도 썼듯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하기를 소망하였다. 또한 이 편지에도 그리스도의 심판을 언급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에 도착한 후에도 조금도 쉬지 못했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편지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 확실한 구절도 있으니,

혹시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되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가 (우리는 너희라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같이 확신 있게 자랑한 일에 대하여 창피를 당할까 염려하노라.

 
아직 고린토, 즉 아카이아 지방에 가서 성금을 모으기 전, 마카도니아에 머물러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1. 우리는 죽지 않고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도 없이 죽은 이들은 썩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http://woonhokum.tistory.com/11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