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교회

튀빙겐 학파의 바울 서신 - 고린도전서 (3)

결혼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인데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만일 헤어졌거든 재혼하지 말고 혼자 지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 남편과 다시 화해해야 합니다. 또 남편은 자기 아내를 버리면 안 됩니다.


 이혼에 관한 말씀이 공관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으니, 마태오의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는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강팍하므로 아내와 이혼을 해도 좋다고 하였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2)음행한 까닭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간음하는 것이며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라." 하고 대답하셨다.


 그렇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한 남자나 여자는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한 쌍만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함수로 치자면 일대일대응[각주:1]이 됩니다. 단,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하길
법률이란 것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구속력을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라고 했으므로 위의 남녀 쌍은 생존자만을 기준으로 한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이니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인이시라……. 감히 여기에 대해서 말을 덧붙이지는 못하겠습니다. 이 장에는 우상들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문제의 해결책이 쓰여 있습니다.

지식이 있다는 여러분이 우상의 사당에 앉아 제물을 먹고 있는 것을 믿음이 약한 사람이 본다면 그는 양심에 꺼리면서도 용기를 얻어 가지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믿음이 약한 그 사람은 여러분의 그 지식 때문에 멸망하게 될 것이니 그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느니라.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결국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일 수 있습니다. 강한 믿음으로 양심에 거리낌 없이 먹는 것은 무방하나 양심에 상처를 입으면서 먹으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죄에 속하는데, 예수께서는 성도들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죄를 짓는 것은 곧 예수께 죄를 짓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비록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도가 아닐지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주 안에서 나의 사도직을 보증하는 확실한 표입니다.

 다른 사람들? 누구에게 사도가 아니라는 말입니까?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우리라고 해서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형제들이나 베드로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혹은 나와 바르나바
에게만 노동하지 않고 먹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베드로 등의 사도들은 따르면서 바울과 바르나바의 사도직은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던 걸까요?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것을 심어주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서 거두어갈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에게는 더 큰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고 지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써본 일이 없습니다. 또 내 권리를 주장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한다는 이 긍지를 빼앗기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오, 흥미롭네요. 복음 전하는 일로도 먹고 살 수 있다는군요. 영적인 것을 주었으니 물질적인 것을 받아간다는 논리네요. 그럴권리를 주님께서 주셨는데도 그러느니 죽는 게 낫다네요. 이 다음에는 바울의 구원 방식에 관한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유명한 데다 밝게 드러나 있어 명백하므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만 보죠.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1. 두 집합 A,B의 원소를 서로 대응시킬 때, A의 한 원소에 B의 단 하나의 원소가 대응하고, B의 임의의 한 원소에 A의 원소가 단 하나 대응하도록 할 수 있는 대응으로 G.칸토어가 무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00년경 최초로 수학에서의 기본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엔싸이버 백과검색 - 일대일대응]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