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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교회

튀빙겐 학파의 바울 서신 - 로마서 (1)

 사도사에 대한 비평학자들 중 튀빙겐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바우어(F. C. Baur)는 ― 이른바 유대 기독교에 반하여 ― 보편적인 구원 사상을 가지고 있는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만이 바울의 저작이라고 주장했다(바우어가 "사도 행전에서 누가는 로마에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주장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주장하였다는 글 ― 쉴만한 물가 :: 네이버 블로그 ― 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바우어가 사도행전의 진정성을 인정한 것이 된다.). 그들 주장에 따라 앞의 네 바울 서신만을 가지고 예수와 복음에 대하여 알아보는 작업을 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인용하는 본문은 대한성서공회의 공동번역개정판과 '그리스도예수 안에' 의 킹제임스 흠정역입니다.

 먼저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부터 살펴보자.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나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위 구절은 공동번역과 흠정역의 본문을 나름대로 적절하게 섞은 것이다. 공동번역은 인성과 신성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인성은 육체를, 신성은 영을 가리키는 것이 구체적이라고 판단했다. 육체로 다윗의 후손이라는 말이 논란을 일으킬 법한데 정통적이라고 불리는 해석에 따라 누가복음의 예수 계보도가 모계, 즉 마리아의 족보를 따르는 것으로 이해하면 문제가 없어진다. 그런데 세 공관복음서 모두에 예수께서 ―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마태복음) ― 시편의 구절을 들어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어 여전히 논란이 된다. 이 질문이 나온 까닭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 아닌데 그리스도로 여겨졌기 때문이고 예수께서도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반박하셨다.

그러므로 로마에 계신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흠정역에는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아직 로마에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는 건데…?

이런 심판은 내가 전하는 복음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시는 그 날에 이루어지리라.

 ? 그가 전하는 복음이 대체 무엇인가. 로마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는데 복음에 관하여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말해도 되는가? 그의 복음이 말한 심판에 대하여 앞 구절에서 알아보자.

율법을 가지지 못한 채 죄를 지은 사람들은 율법과는 관계없이 망할 것이고 율법을 가지고도 죄를 지은 사람들은 그 율법에 따라 심판받을 것입니다. 이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아니하고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성에 따라서 율법이 명하는 것을 실행한다면 비록 율법이 없을지라도 그들 자신이 율법의 구실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

 그는 행위에 따라서 심판받는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은 그 율법이 명령하는 모든 것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은 말문이 막히게 되고 온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에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은 단지 무엇이 죄가 되는지를 알려줄 따름입니다.

 앞에서는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된다면서 여기서는 율법의 행위로는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율법이 명령하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복음서에도 나옵니다. (다음 구절이 없는 사본도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주여, 아무도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가 드러났느니라.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공동번역에는 올바른 관계에 놓는 길이라고 표현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위와 같이 율법에 따른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내세울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되찾게 되었습니까? 율법을 잘 지켜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그분은 오직 유대인들의 하나님이시냐? 그분은 또한 이방인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냐? 참으로 또한 이방인들의 하나님이시니 할례를 받은 사람이나 받지 않은 사람이나 다 같이 그들의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하실 분은 한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내세운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줄 아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합니다.

 
위 구절이야말로 바우어가 말한 보편적인 구원 사상,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