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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경제

벤처창업 '젊은 피' 없다!

기사등록일 2010.06.28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 올해 설립 3년차인 교육IT솔루션업체 A사의 K대표(27)는 20대 벤처 CEO 모임을 결성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뜻이 맞는 CEO를 찾지 못해 포기했다. K대표는 “청년 창업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사업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한국에 들어와 창업한 인터넷업체 T사의 S대표(26)는 “한국에서 사업해 성공하려면 대기업에서 10년 정도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껍데기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청년 창업의 고충을 토로했다.

# 지난달 국내 벤처기업 수가 처음 2만개를 돌파했다. 지금도 증가세는 멈추지 않아 이달 24일 현재 2만1068개사다. 과거 2000년 전후 벤처 열기가 한창이었던 때와 비교하면 두 배나 많다. 벤처펀드 결성도 폭증세다. 올해 결성규모는 2000년 이후 가장 많았던 지난해(1조4163억원)를 뛰어넘을 태세다. 8월 말까지 중소기업청(모태펀드)·지식경제부(신성장동력펀드)·정책금융공사·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4개 기관 주도로 결성할 펀드 규모만 1조3600억원에 달한다.

2010년 여름, 한국 벤처의 양면이다. 정부가 제2의 벤처 활성화 대책 발표로 벤처업계 분위기는 분명 개선됐다. 벤처기업과 ‘실과 바늘’ 관계인 벤처캐피털업계에 속된 말로 총알(자금)이 넘쳐난다. 벤처 경기 전망도 매우 좋다. 벤처기업협회 조사자료에 따르면 벤처 경기실사지수는 지난해 11월 96을 저점으로 매월 기준치(100)를 넘었다. 최근 조사치인 3∼5월은 모두 110을 넘었다. 그러나 2000년 전후의 ‘원조 벤처 활황기’와 분명 차이가 있다. 청년 창업이 예전만큼 열기를 띠지 않는다. 정부의 지원 확대로 현존 벤처기업은 예전과 비교해 나아질 환경에 기대감을 나타냈지만 새로 수혈돼야 할 젊은 벤처창업가들의 움직임은 극히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KAIST 초빙교수로 강단에 서는 이민화 기업호민관(중소기업 옴부즈맨)은 “2000년에 강단에서 대학생들에게 창업의사를 물으면 150명 정도가 손을 들었는데 최근에는 많아야 다섯 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년 벤처기업가 수는 크게 줄었다. 벤처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20·30대 벤처기업가의 비율은 1999년 58%에서 지난해에는 11.9%까지 줄었다. 청년 창업 부진의 요인은 여러 가지이나 1세대 벤처기업인은 금융권의 연대보증제와 같은 규제로 꼽는다. 적게는 3%, 많아야 10%인 고위험 고수익(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특징으로 한 벤처 특성을 고려할 때 연대보증은 벤처기업인이 실패 경험을 살려 더 높게 비상하는 데 필요한 날개를 오히려 꺾는다는 지적이다.

이금룡 코글로닷컴 회장은 “미국 벤처캐피털업체들은 세 번째 사업을 하는 벤처기업인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며 “그만큼 벤처 CEO의 실패 경험을 소중하게 다룬다”고 한국과 다른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민화 기업호민관은 “대학생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선배들의 실패에 따른 학습효과”라며 “재도전이 가능하지 않은 벤처환경에서 청년 창업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청년 창업자의 벤처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 조성도 요구됐다. 이들이 젊음을 바쳐 연구개발(R&D)에 매진하도록 희망과 자부심을 심어 줘야 한다. 벤처캐피털업계가 이들 초기벤처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최근 대거 결성된 벤처펀드가 상장을 앞둔 프리IPO기업에 쏠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벤처캐피털업계 입장에선 중장기적으로 투자처 기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벤처펀드와 투자자들은 최근 열풍이 분 모바일 분야 창업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아무래도 청년 창업자가 도전할 만한 이 분야에 정작 벤처 창업이 이뤄지지 않는다. 거대한 민관 투자 자금이 고스란히 금고에서 썩을 판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